개봉일 : 1998년 12월 24일
영화 속에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대사가 있다. NSA 레이놀즈 부국장(존 보이트)은 이렇게
말한다. "목격자가 알콜 중독자면 살인자도 거리를 활보하고 강간범이라도 상대가 콜걸이면 기소가 안 된다. 문제는
신용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용이란 말이다." 이후 NSA는 로버트 딘(윌 스미스)의 직장에 그의 약점이 될만
한 사생활 관련 내용을 제보해 직장에서 퇴출당하게 하고 신용카드도 정지시킨다. 정보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신용을 무너뜨리고 인생을 파멸시키는 건 일도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첩보위성의 움직임이다. NSA는 비콘 트랜스미터라는 장비와 첩보위성을 이용해 로버트 딘
(윌 스미스)을 추적한다. 전직 NSA 요원 브릴(진 해크만)의 말에 따르면 NSA는 위성으로 로버트 딘의 손목시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첩보위성 기술이 그 정도라 하니 이제 이런 내용은 더 이상 픽션이 아니다. 그리고 그
런 장비는 얼마든지 선하지 않은 목적, 권력자의 사적인 목적에 따라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는 "나쁜 놈 잡는데
만 이용하지 선량한 시민은 관계 없다"고 한다. 딘의 아내 칼라의 말대로 "나쁜 놈, 선한 놈을 누가 가리느냐"는 말이
다. 강력범죄와 테러의 위험만을 강조하는 국가의 선전, 선동만 판칠 뿐이다.
영화가 흐르면서 로버트 딘은 국가가 말하는 안전이 결코 국민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감독은
법안을 추진하던 알버트 상원의원까지 도청의 피해자가 되면서 상원의원 스스로도 뭔가를 깨닫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다. 그가 강조하던 시민의 '안전'은 결국 권력자인 그 자신에게 역시 필요한 '안전'이었던 거다. 한국에서도 기무사, 총
리실 온갖 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해서 문제가 됐다. 몇 달 전 우리 국정원의 어설픈 작전 수행능력을 보면 우리 국민은
그리 걱정할 일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공직자건 민간이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도청, 감청하고 감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웃기는 건 그렇게 피해를 당하던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 역시 그 힘을 이
용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절대 반지'가 손에 없을 때는 모르지만 막상 손에 넣으면 그 문제를 알면서도 파괴하기란 역
시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영화의 기술력은 헐리우드 최고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10여년 전의 영화지만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토니 스코트의
영화답게 촬영과 편집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과연 대중영화의 최고봉이다. 디지털 돌비서라운드 오디오 역시 압
권이다. 영화에서 헬리콥터가 몇 차례 나오는데 헬리콥터가 비행하는 사운드, 그리고 첩보위성의 움직임을 들려주는
오디오는 감탄 그 자체다. 지금 나오는 영화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근래엔 좀 주춤하지만 톰 크루즈와 <탑 건>, <폭풍의 질주>를 만들었고 브루스 윌리스와 <마지막 보이스카웃>, 로버
트 드 니로와 <더 팬>, 댄젤 워싱턴과 <맨 온 파이어> 같은 굵직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던 토니 스코트의 역작. 헐리우
드 흑인 배우 가운데 최고 스타 윌 스미스와 두 명의 전설적인 배우 <프렌치 커넥션>의 진 해크만, <미드나잇 카우보
이>의 존 보이트가 함께 한 영화. 국가가 말하는 '안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에너미 오브 스
테이트(Enemy of the State, 국가의 적)>다.
- 물론 정부에서도 정보를 수집해야겠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해선 안됩니다. 정부가 우리 집 안방
까지 침입할 권리는 없습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래리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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