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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폭풍 속으로 (Point Break), 9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초상




개봉일 : 1991년 12월 21일



작년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허트 로커>의 잔치였다.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선굵은 여성감독은 <허트 로커>라는 저

예산 전쟁영화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부문을 휩쓸며 6개 부문을 수상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시상식 당시엔

이 영화를 보지 못해 <아바타>를 완벽히 누른 이 영화가 몹시 궁금했는데 후에 <허트 로커>의 실체를 확인하고 고개

를 끄덕일 수 있었다. <폭풍 속으로>는 그녀의 4번째 장편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보다 4년 늦게 나온 <스트레인

지 데이즈>를 먼저 봤는데 당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세기말 드라마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후에 보게 된 <

폭풍 속으로>는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감독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여성감독으로 남자들

의 심리, 남자들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묘사한다는 점이었다.   

       
        


FBI 요원 쟈니 유타(키아누 리브스)는 파트너 앤젤로 패피스(게리 부시)와 은행강도 사건을 맡는다. 강도들이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라는 단서를 잡고 쟈니는 수사를 위해 서핑을 배우며 서퍼들과 함께 어울린다. 서퍼들의 리더이면서 강

도들의 리더이기도 한 보디 자파(패트릭 스웨이지)는 쟈니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서핑을 가르치며 가깝게 지내

지만 그가 FBI 요원임을 알게 된 후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진다.


아무래도 키아누 리브스에게 주목이 되는 영화지만 <폭풍 속으로>는 상당 부분 패트릭 스웨이지의 드라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보디는 범죄자이지만 탐구자,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

고 보디는 쟈니에게 멘토의 역할을 한다. 서핑을 가르치면서 보디는 말한다. "파도를 타는 건 정신상태다. 자신을 함몰

시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거다." 보디는 단순히 서핑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난 급진주의자다. 미국 대중의 소극적 태도를 이해 못하겠다."는 보디의 말에 쟈니는 "구원을 외치려는 건 아니겠지."

라고 묻는다. 중요한 질문이다. 보디는 웃는다. 영화 속에서 서핑은 명백히 '구원'을 상징한다. 그들에게는 서핑 뿐 아

니라 암벽, 그리고 스카이 다이빙과 같은 100% 순수한 아드레날린을 분비케 하는 활동 모두가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

원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파도가 무엇이냐는 대화 속에서 보디는 호주의 벨스 비치를 말한다. 50년만에 한 번

온다는 파도. 전설과 같은 것이라는 동료의 말에 보디는 실제라고 단언한다. 그 파도를 언급하며 보디는 "궁극적인 것

을 추구하고 그 댓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일 수 없어."라고 말한다. 보디에게

는 이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 영혼 없는 육체로 살아가는 것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

는 삶이 훨씬 가치있는 인생인 것이다.       




은행강도가 등장하는 영화 가운데 <폭풍 속으로>와 <히트>를 좋아하는데 각각 특징이 뚜렷하다. <폭풍 속으로>는

영화사에 유례 없이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은행털이에 나서는 영화다. 대통령의 가면을 쓴 강도들, 설정이 기발하고

재치있다. 레이건, 카터, 존슨, 닉슨 이렇게 4명의 대통령은 서로 대통령의 호칭을 하고 위트있는 대화(은행을 나서며

던지는 "Don't forget to vote!"는 시나리오가 주는 재미의 최고치다.)를 나누며 은행을 턴다. 특히 닉슨의 말과 행동에

서 보이는 '경박함'이 재미있다.


<폭풍 속으로>가 기성사회를 거부하고 그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풋풋한' 강도질이라면 <히트>는 프로페셔널의 완

전무결한 은행털이다. 로버트 드 니로, 발 킬머, 톰 시즈모어라는 남성미 물씬 넘치는 멋진 사내들이 말끔한 수트 차림

에 기관총으로 완전무장하고 은행을 공격한다. 닐 맥컬리(로버트 드 니로)는 은행에 들어가 창구를 밟고 올라서 이렇

게 말한다. "우리는 은행의 돈을 노린거다. 당신들(고객들)의 돈을 노린 게 아니다. 당신들의 돈은 연방정부에 의해 보

호된다. 영웅이 되려 하지 마라. 가족을 생각해라." 영화의 상황과 대사 속에 위트 따위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히트>

에는 명장면, 명대사가 넘쳐난다. LA라는 대도시의 큰 은행, 푸른 회색 빛이 감도는 스크린. 영화는 강도들의 은행털

이를 비장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폭풍 속으로>에는 명품 조연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공교롭게도 <히트>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톰 시즈모

어. <폭풍 속으로>에서는 마약단속국(DEA) 언더커버 수사관으로 카메오 출연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쟈니의 파

트너 앤젤로 역할의 게리 부시. 그런데 막상 게리 부시의 영화를 찾아보니 생각과 달리 별 다른 게 없다. <리쎌 웨폰>

라이터 불로 손목을 태우는 장면에서 이 악물고 참던 조슈아 정도? 그리고 나면 <언더시즈>와 <폭풍 속으로>가 남지

싶다. <폭풍 속으로>도 훌륭하지만 <언더시즈>에서 테러리스트 윌리엄 스트라닉스(토미 리 존스)와 공모해 항공모

함을 탈취하는 크릴 부함장 역할의 게리 부시는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흠 잡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게

리 부시의 얼굴은 색깔 뚜렷한 악역과 잘 어울린다.       


서핑하고 스카이 다이빙하는 구도자 보디(패트릭 스웨이지). 거친 목소리에 남성미 가득했던 이 멋진 배우는 2008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2009년 세상을 떠났다. <더티 댄싱>, <사랑과 영혼>, <폭풍 속으로>로 기억되는 매력적인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와 <매트릭스>의 히어로이자 샤를리즈 테론의 연인 키아누 리브스가 그려낸 9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초상 <폭풍 속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