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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히트 (Heat)>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가 마주한 역사적 순간




개봉일 : 1996년  8월 10일



96년 당시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같은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74년 작품 <대부 2>에 두 사람이 출연하긴 했다. 하지만 한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

은 없기에 이 두 배우가 하나의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고 대화를 나누는 영화는 2008년 존 애브넛 감독의 <살인의 함

정> 이전까지 마이클 만의 <히트>가 유일했다.


빈센트 한나(알 파치노)는 LA 경찰의 유능한 강력반장이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이 말해 주듯 가정은 포기하고 경찰로

서의 삶에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 어느 날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이 수송하던 채권이 닐 맥컬리(로버트 드 니로)가

이끄는 무장강도들에게 탈취당한다. 빈센트 한나는 이 사건이 완벽한 프로들의 범행임을 직감하고 추격에 나선다.  




감독은 영화의 두 축, 빈센트와 닐을 대조적으로 그린다. 한 사람은 경찰반장으로 제도권 사회에 자리잡은 삶을 살고

다른 하나는 사회 밖에서 강력범죄를 이어가며 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선 빈센트의 삶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

빈센트는 두 번 이혼했지만 현재 세 번째 결혼에도 크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회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

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면 범죄로 삶을 채우고 있는 닐은 오히려 다정한 사람으로 또 불안정한 삶 속에서 안정적인 삶

을 동경하는 남자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의미있는 씬 중에 하나가 닐 일당이 거사를 앞두고 레스토랑에서 갖는 가족 모임이다. 빈센트는 그

모습을 보며 "Goddamn convention."이라 중얼거린다. 그렇다. 그건 회합.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모임이다. 닐은 크

리스(발 킬머)와 마이클(톰 시즈모어)의 가족을 부러운 듯 쳐다본다. 닐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장면이다.(범

죄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닐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감독은 이

렇게 닐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마이클이 아내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고 아내가 좋아하자 닐이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출

처만 묻지 마." 모두들 웃는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농담이다.     


닐의 패밀리는 유사 가족의 형태를 보인다. 크리스의 도박 습관 때문에 마음이 떠난 샬린(애슐리 쥬드)이 크리스와 헤

어지려 하자 닐은 "한 번만 기회를 줘라."며 샬린을 설득한다. 동시에 크리스에게도 도박은 끊고 가정에 충실할 것을

충고한다. 크리스는 물론 샬린도 닐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다. 닐은 패밀리에서 가장과 같은 그리고 크리스에게는 형이

면서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모습이 불안한 범죄자의 삶을 살면서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삶과 가정을 지향

하는 닐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들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이 둘 있다. 하나는 웨인그로(케빈 게이지)이고 다른 하나는 이디

(에이미 브렌먼)이다. 웨인그로는 영화 초반 경찰을 죽이면서 닐의 원칙을 깨고 닐에게 죽을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은 인물. 그에 대한 복수로 영화 후반 닐의 계획을 경찰에 제보한다. <히트>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그로 인해 벌

어진다. 그런 이유로 닐이 웨인그로를 '처형'하는 장면 또한 명장면이다. 웨인그로를 향해 총을 겨눈 닐의 "Look at

me."라는 대사를 잊을 수가 없다.       

이디는 닐의 연인이 되는 여자다. 컨벤션 중에도 닐은 이디에게 전화한다. 이디와 함께 하는 시간, 닐은 다른 사람이

다. 강한 남성 캐릭터가 충돌하는 영화에 감독은 이디라는 인물을 넣어 로맨스를 연출하며 닐의 다양한 캐릭터를 관객

에게 보여준다. 빈센트는 아내와의 대화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닐은 이디와의 첫 만남부터 인간미

있는 남자로 그려진다. 마이클 만은 이렇게 빈센트와 닐을 설명한다.       
 
         
            


영화의 캐스팅은 놀라움 자체다. 지금은 영화 한 편의 주연이 될만한 중량감 있는 인물들이 조연으로 대거 등장한다.

일단 발 킬머는 영화 포스터에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의 배우다. 패밀리의 일원으로 등장

하는 톰 시즈모어의 중량감도 대단하다. 두 사람이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스크린을 채우는 것만으로 그림이 나온다.

발 킬머의 아내로 등장하는 애슐리 쥬드도 눈에 띈다. 아름다운 외모에 지적인 목소리, 개인적으로 2001년 <썸원 라이

크 유>부터 눈여겨 봤는데 그 이전에도 97년 <키스 더 걸>, 99년 <더블 크라임>, <아이 오브 비홀더> 등 좋은 영화들

에 출연해 왔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어느 덧 세계의 연인이 된 나탈리 포트만의 소녀 시절 모

습도 볼 수 있다. 94년 <레옹>에서 마틸다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그녀가 이듬해 <히트>에서 대배우 알 파치노의

딸이 되어 관객을 찾아왔다. 거기에 특별출연으로 등장하는 존 보이트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마주 앉은 레스토랑이다. 가정과 인생, 여자에 관한 인간적인

대화가 오간다. 빈센트는 닐에게 범죄를 중단할 것을 경고하지만 닐은 "나는 내가 가장 잘 하는 있는 일을 한다. 당신

도 당신이 잘 하는 멈추지 마라.(I do what I do best. You do what you do best.)"라고 답한다. 나는 멈추지 않을 테

니 잡으려면 잡아보라고 응수한 것이다. 빈센트의 "난 이 일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다."는 말에 닐은 "나도 그렇다."라

답하고 "다른 건 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에 또 한번 "나도 그렇다"라 답한다. 차분한 대화 속에서 두 배우의 엄청난 에

너지를 느낄 수 있다. 헐리우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명의 배우가 보여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최고의 배우

들이 만나 그려낸 비장미 넘치는 남성 드라마,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라는 명배우의 모습을 하나의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영화 <히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