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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콜린 퍼스, 제프리 러쉬가 보여주는 최고의 호흡 <킹스 스피치>




개봉일 : 2011년  3월 17일




<킹스 스피치>, <소셜 네트워크>, <블랙 스완>, <파이터> 올해 오스카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주목이 되

는 영화들이었다. 소재도 다양하고 하나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들이라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여느 때

보다 풍성한 아카데미였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드라마가 좋았던 <킹스 스피치>가 가장 기대됐는데 역시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아카데미를 휩쓸었다.


<킹스 스피치>를 보며 곧 2006년 개봉작 <더 퀸>이 생각났다. 이보다 우아할 수 없는 헬렌 미렌이 연기한 엘리자베스

2세, 그랬다. <킹스 스피치>에서 콜린 퍼스가 연기한 조지 6세는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다. 이렇게 두 영화는 동일

하게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가족이었던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하게 두 영화가

뒤섞였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조지 6세는 영국에서는 말더듬이 왕으로 유명하다. 형인 에드워드 6세가 미국

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면서 어쩔 수 없이 왕이 된 남자. <킹스 스피치>는 말을 더듬기에

대중 앞에 서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조지 6세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영화 팬에게 <킹스 스피치>는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운 영화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액션 없이 훌륭

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만으로 영화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는 상당 부분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가 주고

받는 대사들로 채워져 있는데 두 사람의 연기는 영화에서 시나리오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아카

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위트있는 수상소감을 남긴 콜린 퍼스는 말할 것도 없고 제프리 러쉬는 <샤인> 이후 오랜

만에 대배우의 저력을 뽐낸다. 이런 배우가 장동건과 함께 <워리어스 웨이> 같은 영화에 나왔다니 배우에게 작품선택

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케 한다.


조지 6세가 말더듬는 증상을 치료받는 드라마에서 가족의 역할도 작지 않은데 헬레나 본햄 카터도 시종 남편에게 힘

을 실어주는 사랑스런 아내이자 왕비였던 엘리자베스를 연기한다. "당신의 청혼을 두번이나 거절한 건 당신을 사랑하

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실에 갇히기 싫어서였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사람이 이토록 멋지게 말을 더듬

으니 어쩌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둘지도 몰라"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사였다.      




<킹스 스피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재밌는 부분들이 많다. 수상이 되기 전의 처칠이 두 차례 등장하고 조지 6

세의 가족들이 기록영화를 보는 장면에서는 히틀러가 등장한다. 처칠은 계속 우스꽝스럽게 나오고 히틀러를 보며 "뭐

라고 말하는 거에요?"고 묻는 딸의 질문에 조지 6세는 "I don't know. but he seems to be saying it rather well.(모르

겠다. 근데 연설은 정말 잘 하는구나.)"라고 대답한다. - 영국식 영어의 발음과 억양, 시쳇말로 '간지'난다. 공교롭게도

콜린 퍼스가 출연했던 <러브 액츄얼리>에서 미국 여성들이 단지 영국남자라는 이유로 왜 '뻑이 가는지' 백번 이해가

된다. - 훗날 역사 속에서 히틀러, 처칠이 어떤 인물이 될지 아무도 몰랐던 시간, 감독의 재치있는 연출이다.


촬영이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들자면 버티(조지 6세)와 로그가 말다툼을 벌이며 거리를 걷는 장면을 꼽고 싶다. 투 샷

으로 정면에서 잡아 스테디캠으로 간다. <좋은 친구들>에서 헨리(레이 리오타)가 연인과 지하로 내려가는 2분이 넘는

스테디캠 컷과 비교하면 좀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큰 움직임 없이 짧은 컷으로 이뤄진 영화에서 이런 스테

디캠은 도드라진다. 영화 막바지 조지 6세와 처칠이 함께 걷는 투 샷도 스테디캠으로 잡아 비슷한 느낌으로 촬영했다.

영화음악도 탁월했다. 클래식 스코어 전반이 훌륭하지만 특히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콘체르토, 베토벤 심포니 7번 2악

장은 절묘하게 삽입되어 영화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에 감동을 더한다. 영화를 본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5분 간의 연설장면. 버티와 로그가 함께 하는 방송실, 영화는 마지막 감동을 선사한다. 로그는 버티가

힘들어 할 때마다 코치하며 연설을 돕는다. 버티는 힘들게 더듬으면서도 국내외에 있는 영국인을 향해 국왕으로 연설

한다. 조지 6세의 연설녹음을 많이 들으며 캐릭터를 고민했다는 콜린 퍼스의 노력이 어떠했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이다.

동시에 오스카가 그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여기서도 감독은 두 사람 사이에 위트있는 대사

를 넣어 진지한 휴먼 드라마에 코미디를 가미한다. 뛰어난 배우들의 힘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킹스 스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