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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트레인스포팅> 대니 보일과 이완 맥그리거 초기 명작




개봉일 : 1997년  2월 22일




Choose a life, choose a job, choose a career, choose a family, choose a fucking big television,

choose washing machines, cars, compact disc players and electrical tin openers.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강렬한 오프닝에 등장하는 주인공 렌튼(이완

맥그리거)의 독백이다. 97년 개봉 당시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다. 막장 인생, 스코틀

랜드 젊은이들의 희망 없는 삶을 그려낸 <트레인스포팅>은 파격에 파격이었다.




                 



렌튼(이완 맥그리거), 스퍼드, 벡비(로버트 칼라일), 식보이, 토미, 이렇게 다섯 친구는 아무런 희망, 미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의 낙은 오로지 섹스와 마약, 마약과 섹스다. 그들의 삶은 마약과 섹스의 반복이다.

어느 날 이들과 어울리는 여자의 (누구의 아이인지도 알 수 없는) 아기가 마약을 집어먹고 죽는 일이 벌어진

다. 그 후에도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이후 렌튼은 평범한 삶을 찾아 떠나지만 얼마 못가 마약쟁이로 돌

아온다.



영화의 표현 수위는 대단하다. 섹스 장면이야 그렇다 쳐도 마약을 제조, 주사하는 장면들이 여과없이 묘사된

다. 영화에서 마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이들에겐 마약만이 희망이고 구원이다. 영화 초반 렌튼은 좌

약식 마약을 항문에 넣는다. 갑자기 장에 문제가 생긴 렌튼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로 들어간

다.(화장실이 정말 압권이다.) 변기에 앉아 설사하던 렌튼은 좌약이 변기로 빠졌음을 직감하고 변이 가득한 변

기를 휘젓는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변기 속으로 들어간다. '구원'을 위해서는 똥통에라도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여기서 명장면이 나온다. 변기 아래에는 바다와 같은 넓은 공간, 맑은 물이 있다. 렌튼은 물 속을 깊이

헤엄쳐 들어가 알약 두 개를 건져서 나온다.





대니 보일은 <트레인스포팅>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어차피 삶이라는 게 '환각'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마약

에 찌들어 환각 속에 사는 이들을 묘사하는데 더없이 어울리는 멋진 표현이다. 이와 같은 초현실적 묘사는 영

화에서 종종 보인다. 마약에 취해 쓰러진 렌튼을 남자들이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는 장면. 렌튼은 땅 속으로

꺼진다. 렌튼의 시점에서 보면 마치 관 속에서 밖을 내다보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장면에 루 리드의

'Perfect day'가 흐른다. 환각 속에 있는 인물에게 어울리는 몽환적인 음악이다. 렌튼에게는 역설적으로 정말

완벽한 날이다.



영국 영화이기에 영국 영어를 '푸짐하게' 들을 수 있는 영화가 <트레인스포팅>이기도 하다. 휴 그랜트나 콜린

퍼스의 세련되고 멋진 액센트와는 다소 다르지만 이완 맥그리거의 발음을 비롯해 브리티쉬 잉글리쉬의 매력

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영국 영어는 액센트가 세고 억양이 독특해 때로 독일어를 듣는 느낌을 준다.

미국 영어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이 사용하고 확실히 미국의 영어와는 다른 언어다. 't'나 'o'는 확실히

하고 'r'은 죽인다. 영국 영어를 좋아하는 이에게 <트레인스포팅>은 영국 영어라는 언어의 향연이다.  





영화의 배경은 스코틀랜드다. 섹스 비디오 사건으로 여자 친구를 떠나 보낸 토미가 "스코틀랜드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냐."고 하자 렌튼이 정색을 하고 퍼붓는다. "우리는 쓰레기 중에 쓰레기다. 어떤 사람들

은 영국인을 증오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들도 그저 병신 머저리다. 근데 우린 그 머저리들에게 지배당했

다." 스코틀랜드 젊은이들의 희망없는 삶을 그려낸 '정치적'인 영화 속에 담아낸 대니 보일의 '정치적'인 대사

다. 많은 영화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갈등을 그려내는데 <트레인스포팅>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연

관지어 묘사한다.  



렌튼(이완 맥그리거)이 마약을 끊도록 하기 위해 부모가 그를 방에 가둔 장면도 훌륭하다. 렌튼의 환각 속에는

렌튼의 미성년 애인 다이앤도 나오고 폭력을 즐기는 벡비(로버트 칼라일)와 다른 친구들, 마약을 집어먹고 죽

은 아기도 등장한다. 렌튼은 환각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절규한다. 이완 맥그리거는 미치기 직전의 마약 중독

자를 제대로 연기한다. 대니 보일은 이 와중에 알프레드 히치콕이 <현기증>에서 보여준 줌 인 트랙 아웃도 보

여준다.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과 더불어 훌륭한 장면이다. 대단한 대니 보일이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벡비를 연기한 로버트 칼라일이다. <풀 몬티>에서 스트립쇼를 준비

하는 비루한 가장 가즈를 연기한 인물. <007 언리미티드>에서 소피 마르소의 연인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역시

그의 진정한 가치는 <트레인스포팅>이나 <풀몬티>에서 볼 수 있다. 이완 맥그리거와 대니 보일에게도 이 영

화는 특별하다. 이완 맥그리거는 이 영화로 스타가 된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의 초기 작품 <쉘로우

그레이브>나 <트레인스포팅>을 넘어서는 작품은 없지 싶다. 대니 보일도 마찬가지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를 휩쓸긴 했지만 역시 그의 색깔은 <트레인스포팅>에 제대로 묻어있고 이 작품이 그의 최고작이 아

닌하 하는 생각을 한다. 대니 보일과 이완 맥그리거가 만나 만들어낸 명작, 오랜만에 <트레인스포팅>을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