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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그랜 토리노> 이민자들을 향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




개봉일 : 2009년  3월 19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존하는 영화 감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감독이다.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이 이미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어 놓고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뛰어넘는 영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이스트우드는

매번 감탄할만한 걸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완벽한 드라마와 선명한 메시지, 거기 더해 뚜렷한 정치성과 인생

을 관조하는 老 감독의 시선은 언제나 관객을 감탄, 감동케 한다.





물론 그의 영화를 보며 어떤 메시지도 추출하지 않고 드라마 자체만 감상해도 그만이다. <미스틱 리버>를 보

면서 딸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 오해로 인한 '오발탄'에 주목해 감상해도 그만이고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

면서 그저 여성 복서의 불행한 운명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굳이 그 안에서 정치적 메시지나 인간

의 구원과 같은 내용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런 내용을 알고 보면 영화를 한결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음

은 물론이다.



이런 구분이 우습기도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했던 과거 작품 <퍼펙트 월드>나 <앱솔루트 파워>와

같은 영화가 매끄러운 상업 영화라면 언젠가부터 그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그리는 듯하다. 개

인적으로 그 경계를 <미스틱 리버> 정도로 본다.  이후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그랜 토리노>에 이르는 과정

을 보면 그가 영화를 통해 분명히 정치적 코멘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

가한 아들들과 손자, 손녀와는 정서적 차이 때문에 전혀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이웃에 사는 베트남 이민자들

을 경멸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과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영화 속 월트는 흔히 말하는 '꼰대'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아들의 대사처럼 그는 50년대를 살아간다. 요새 아

이들이 다 그럴진대 피어싱을 하는 손녀딸과 장난끼 가득한 아이들이 못 마땅하고 일본차를 타는 아들도 탐탁

치 않다. 월트에겐 현재의 모든 것들이 불편하다. 미국의 상징과 같은 포드에서 50년을 일한 월트, 30년이나

된 포드의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보물처럼 간직한 주인공 월트를 보고 있으면 관객은 영화 속 설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미국의 정신을 간직한 월트(그의 집에는 늘 성조기가 걸려있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이민자들의 문

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어와 같은 동양의 언어가 쓰이는 장면을 보

면 대부분 인물과 상황이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은 영어를 사용하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이질성을 보여주고 타자화한다. 극중 베트남 사람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미국 영화에서 이런 대화는 거슬린다. 하지만 영화 속에는 이들의 대화가 적잖이 삽입되어 있다. 이스트

우드는 이들도 미국이라는 용광로(melting pot)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이발사는 이탈

리아인이고 공사현장 감독은 아일랜드인, 병원에서 만난 의사도 동양인이다. 그들 모두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원 아닌가. 이스트우드는 특별히 문화적으로 '야만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조명하고 있

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이민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베트남 소녀 수와의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월트는 다소 모자란 베트남 소년 타오에게 관심을 갖는다. 가족에게 주지 못하는 애정을 낯선 베트남 소년에

게 주는 것이다. 공사현장에 소개해 주고 각종 공구를 사 준다.(아들 내외가 집에 찾아 와 집을 처분하고 요양

원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사건 이후 월트는 급속히 베트남 이웃들과 친해진다.) 사교적이

지 못한 타오를 위해 남자답게 말하는 법,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월트의 인간

미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인간구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삶

의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웃음을 가져다 준 이들, 타오와 수를 위해 월트는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다. 미국의 정신을 간직한 마초면서 꼰대이기도 한 월트는 그렇게 자신이 경멸하던 존재, 야만적인 동

양인 이민자들을 위해 삶의 마지막 시간을 불태운다.





알려져 있듯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화당의 열성 지지자다. 사안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낙태라든지 총

기 문제에 대한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사형제에는 찬성하는 걸로 알려져있다. 솔직히 공화당 지지자 치고 괜찮

은 사람 없다는 게 (낙태, 총기, 사형제 대략 이런 이슈에 일관된 입장을 갖는 공화당 지지자) 개인적인 생각이

지만 이런 멋진 보수라면 얼마든지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이다. 헐리우드의 어른, 헐리우드의 거인 클린트 이스

트우드는 이렇게 멋지게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