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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크레이지 하트> 제프 브리지스 1인을 위한 음악영화




개봉일 : 2010년  3월  4일





나는 제프 브리지스라는 배우를 참 좋아한다. 오래 전에 리들리 스코트의 <화이트 스콜>에서 그를 인상적으로

본 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하나 같이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요 몇년 사이 특별히 기억나는 캐릭터는 <

아이언맨>에서 맡았던 군수업자 역할이 있고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에서 연기한 볼품없는 늙은 보안관

역할이 있다. 역시 강렬하고 폼나는 악역으로 나왔던 <아이언맨>같은 영화에서의 모습이 보기 좋지만 <더 브

레이브>에서의 배역은 '그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영화 속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냈

다. 우연히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를 보다가 지난 6월호에서 제프 브리지스를 발견했다. 그가 표지 모델이었

고 그에 관한 특집기사가 실려있었다. 그리고 기사는 그에게 첫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크레

이지 하트>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었다.



왕년의 컨츄리 스타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 이제는 퇴물이 됐고 알콜 중독에 자기 몸도 제대로 추스리

지 못한다. 이곳 저곳을 떠돌며 노래하던 배드 블레이크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 진(메기 질렌홀)을 알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후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찾는다.





영화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를 그린다. 쓸쓸하고 건조한 삶을 사는 가수가 한 여자를 만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좋은 시간이 지속될 즈음 남자가 큰 실수를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실망해 남자를 떠나간다.

이야기와 사건의 전개에 특별한 암시라든지 반전 따위는 없다. 그저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흐름대로 흘러간

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완전히 몰입케 한다. 제프 브리지스라는 배우의 힘이다. 이제 60을 넘긴 이 베테랑

배우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떠오르

기도 한다. 이 영화 또한 잭 니콜슨의 원맨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당시 이 작품은 잭 니콜슨의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었는데 보란듯이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크레이지 하트>도 그렇다. 제프 브리지스의 오스카 수상을 위해 제작

되지는 않았겠지만 이 영화는 제프 브리지스 1인이 완벽하게 지배해 끌고 가는 영화다. 그리고 제프 브리지스

는 이 작품으로 통산 5번째 아카데미에 노미니됐고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영화를 보면 술에

찌들어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배드 블레이크라는 인물이 정말 답답해 보일 정도로 제프 브리지스는 캐릭

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그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노장 배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크레이지 하트>는 음악영화다. 제프 브리지스는 영화 속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한다. 꽤 괜찮은 기

타실력과 노래실력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음악의 분위기가 컨츄리 스타 가스 브룩스의 음악을 연상

케 하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는 (과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문득 문득 에릭 클랩튼을 떠오르게도 한다. <에스콰

이어> 인터뷰는 영화 속 가수로서의 제프 브리지스에 주목해 이뤄지기도 했고 실제로 제프 브리지스는 가수

로 데뷔할 계획이라 한다. 영화 속에서 실력도 입증했고 워낙 배우로 명성이 있는 스타라 어느 정도의 흥행은

어렵지 않을거라 짐작하지만 어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콜린 퍼렐의 출연도 흥미롭다. 배드 블레이크에게 가수로서 모든 것을 배우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 토미

스윗 역할을 맡았다. 특별한 사건도 갈등구조도 없는 영화 속에서 등장 시간과 관계 없이 토미 스윗이라는 인

물의 비중은 크다. 토미 스윗이 '싸가지' 없는 인물이었으면 영화가 재미있었겠지만 감독은 그를 예의 바르고

(그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는) 선배를 대접할 줄 아는 인물로 그린다. 이야기는 온전히 배드 블레이크에게 집중

한다. 역시 이 영화는 제프 브리지스를 위한 영화다. 놀라운 건 콜린 퍼렐 역시 수준급의 노래를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멋진 배우들이 기성가수에 못지 않은 노래 실력까지 보여준다. 참으로 대

단한 엔터네이너들이다.    





잔잔한 기타와 분위기 있는 컨츄리 음악, 미국 산타페의 풍광이 멋지게 어울리는 영화 <크레이지 하트>다. 멋

진 노래를 들려주는 중년의 멋진 배우 제프 브리지스. 지금이 전성기라고 할까. 60을 넘긴 나이에 배우로서 더

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그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