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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도가니> 우리가 살아가는 '지옥'이라는 세상




개봉일 : 2011년  9월 22일





온 나라가 분노로 끓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하나 같이 성폭행 피해자였던 장애 학생들에게 지옥 같았던

광주 인화학교에서의 사건에 분노하고 있다. 워낙 방송에서 많이 다뤘기에 영화의 내용도 많이 알려졌고 결말

까지도 대부분의 관객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관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는 썩어있는 한국 사회, 구태의연한 공공 기관, 광기의 대한민국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사건과 대화 하

나 하나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가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인권단체 간사 서유진(정유미)이 교육청을 찾아가 조치를 요구하지만 담당자는 방과 후에 벌어지는 일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구청으로 가라고 한다. 간사는 이미 구청에서 퇴짜맞고 발걸음을 돌려 교육청에 온

상황이다. 아이들은 생지옥에 살고 있는데 관계 기관의 공무원들은 느긋하다. 이게 비단 영화 속에서만 보이

는 모습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교장 형제가 구속된 후 법원 앞에서 교장이 출석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나와 집회를 갖는다. 그들에게 교장은

핍박받는 하나님의 종이고 교장을 곤경에 빠뜨린 성폭행 피해 아동들은 악마들이다. 완벽히 뒤바뀐 상황이다.

성도들 가운데는 교장의 죄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적인 친분과 실제적 이익(헌금) 앞에 그 모든 것

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교인이 아니고 사람과 돈을 섬기는 무리들이다. 영화는 광기의 기독교,

이 땅의 일그러진 크리스찬의 모습을 묘사한다.



교장 형제를 체포해 차에 태우고 가던 형사는 진지하게 조언한다. "죄 없다는 말은 혼자 기도할 때나 하시고

지금부터 
전관 변호사를 찾으라. 가능하면 부장판사급 이상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가운데 하나다.

그들로선 얼마의 돈이 들든 자유의 몸이 되고 싶을테고 부장판사로 퇴임하고 개업한 변호사는 그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으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실제로 인화학교 사건 당시 교장의 변호를 맡았던 인물은 광

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다. 판사는 피고의 편에서 판결을 내린다. 법은 권력과 돈을 따라간다. 이 땅

의 법은 결코 약자의 편에 있지 않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역 토호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만화 <이끼>에도 그런 대사가 있다. "어떤

공권력도 토호를 이길 수 없다." 자애학원은 교장의 왕국이다. 그 학교에서 교장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교사를  채용할 때 학교가 보통 1억원의 돈을 받는다는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그러면 이 돈은 지역의 경찰, 검

찰, 각종 감독기관으로 들어간다. 영화에선 경찰에 대한 상납만 직접적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 불법, 탈법이

저질러지는 그와 같은 학교(기관)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관계 기관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뿌리는

건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 속 교장과 같은 인사는 지역의 경찰, 검찰, 언론사의 인사들에게 정기적으로

접대, 상납하고 호형호제하며 가족과 같이 지낸다. 이해관계로 얽힌 그들의 조직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게

토호의 힘이다. 


  



"니 옳은 일 하겠다고 가족은 팽개치나. 니한테는 딸보다 그 애들이 소중하드나." 강인호(공유)의 어머니가 법

정에서 강인호에게 말한다. 감독이 영화 속에서 또 하나 방점을 찍는 대사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살아가는 게 가장 편하다. 그랬기에 교장 형제의 변호사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파렴치한 성 범죄자들을 변

호한다. '양심' 따위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인호를 자애학원에 소개한 김 교수 역시 피해자 가족

과의 합의를 위해 인호를 설득한다. 그러면서 인호가 학교 측에 낸 발전기금도 돌려주고 서울에 교직도 제안

한다. 인호에겐 거부하기 힘든 파격적인 제안이다. 몸이 많이 아픈 인호의 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검사

역시 '로펌으로의 이적'이라는 제안 앞에 재판을 포기하고 판사 역시 전관예우 전통(그 자신도 언젠가 받아야

할 혜택)을 지키는 판결을 내린다. 세상은 그런거다. 다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그깟 벙어리들 '인

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강인호는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양심에 따라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 실제 사건에도 강인호의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 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소신을 가지고 약자(명분)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매장한다. 흉악한 성 범죄자라 해도 돈과 권력을 가진 그들을 중심으로 힘있는 자들은 똘

똘 뭉친다. 어찌보면 이 사회는 자신과 가족의 유익을 모두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해 온 강인호와 같은 사

람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이 알려져있듯 가해자들은 모두 풀려났다. 영화 속에서 가해자로 등장한 3인 역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

다. 결말을 알면서 관람했기에, 악마들이 모두 자유의 몸이 될 것을 알면서 봤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마

지막 룸싸롱 장면에서 변호사가 입에 올리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유난히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가 살고 있

는 세상이 지옥의 '도가니'임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분노하고 또 분노하고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또는 영

화 속 대사처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게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