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비밀> 그리고 <피아니스트>, <더 리더>와 <폭로>

4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사랑, 성적 욕망과 판타지를 소재로 다룬 영화 <사물의 비밀>이 상영 중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사물의 비밀>을 프리뷰했는데 거기서 다루지 못한 내용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영화들 몇 편

에 대해 몇 자 끄적여본다.

먼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2001년 작품 <피아니스트>다. 골격으로만 보면 이 작품이 가장 <사물의 비밀>과

흡사하다. 피아니스트이면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금발의 공대생 클레메

(브누아 마지멜)를 만나고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본 후 그에게 빠져든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에리

카는 40살, <사물의 비밀>의 혜정(장서희)도 40이다. 혜정이 겉으로는 교양있는 사회학 교수로 살아가지만 컴

퓨터 앞에서는 '해방 XX'라는 닉네임으로 섹스 카페에서 활동하듯 에리카는 수업이 끝나면 혼자 섹스 샾에 들

러 포르노를 보고 자동차 극장에 가 연인들의 섹스를 훔쳐보며 오르가즘을 느낀다. 다만 혜정이 자신이 좋아

하는 우상(정석원)을 보며 그저 성적 판타지만 꿈꿀 뿐 어떤 욕망도 분출하지 못한다면 에리카는 제자 클레메

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고스란히 불태운다는 차이가 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2001년 54

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2009년 작품 <더 리더>다. 영화를 보고 남는 긴 여운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이야기. 케이트 윈슬렛이 미국 아카

데미와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케 한 명작이다. 30대 여인 한나(케이트 윈슬렛)는 10대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오로지 욕망에 이끌려 관계를 갖는다. 남녀 사이에서 성별권력

은 남성이 늘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지만 마이클이 미성년이기에 통상의 권력관계가 역전되어있고 이들의 관

계는 늘 한나가 주도한다. <피아니스트>에서 클레메가 사리분별이 가능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더 리더>의 마이클과는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사물의 비밀>이나 <피아니

스트>의 인물들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이고 뒤에 다루는 <폭로>는 더 흥미롭게 직장 상사와 부하라는 설정을

가져왔다.)을 언급할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다소 심심(?)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베리 레빈슨 감독, 마이클 더글라스, 데미 무어의 94년 작품 <폭로>다. 과거의 연인 샌더스(마이

클 더글라스)와 존슨(데미 무어)는 직장에서 상관과 부하의 관계로 만난다. 존슨은 샌더스를 추행하고 강제로

관계를 가지려 한다. 샌더스는 겨우 위기를 벗어나지만 이후 존슨은 오히려 샌더스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고

소한다. 일반적인 성희롱, 성추행에서 남녀 관계를 뒤집은 흥미로운 영화다. 앞선 영화들처럼 나이 많은 여자

와 어린 남자 따위의 설정은 없지만 한 가지 주목할만한 공통점이 있다. 나는 그걸 '권력'의 문제라 생각한다.

언뜻 보면 앞의 영화들과 맥이 닿아보이지 않지만 이 권력의 문제 때문에 <폭로>는 앞선 영화들과 함께 이야

기할 수 있다.


<사물의 비밀>에서 교수와 제자, <피아니스트>에서 역시 교수와 제자, 압도적으로 한쪽이 우위에 있는 권력

관계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권력의 문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두 영화 속 여성은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성적인 욕망을 간직한 하나의 여성일 뿐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게 <폭로>다. <폭로>는 여성의 성적 욕망

과 함께 권력관계를 드러낸다. 성별 권력은 늘 남성이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지만 사회에서의 권력은 그렇지

않다. 존슨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샌더스와 성관계를 가지려한다. 그리고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남자를

사회적으로 부숴버리려 한다. 영화 속에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Sexual harassment is not about sex. It is

about power. She has it, you don't.(성희롱은 성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문제죠. 그녀에겐 권력이

있습니다. 당신에겐 없죠.)"


<사물의 비밀>를 보고 <피아니스트>, <더 리더>, <폭로>를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 섹스(그리고 욕망)와 권력

(힘)의 문제를 생각한다. 흥미로운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