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인가. 대략 그 무렵 퀸, 이글스, 미스터 빅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다. 'To be with you'가 난리였을 때
'Lean into it'이라는 앨범의 전곡을 흥얼거릴 정도로 듣고 또 듣던 때였다. 퀸이야 말할 필요가 없으니 생략.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 시절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에어로 스미스의 'Crying', 'Amazing'이라는 곡을 듣게 됐다.
지금 확인해 보니 이 앨범 'Big ones'가 출시된 해가 94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에 완전 매료됐고 곧
앨범을 구입했다. 전곡을 듣고 또 들었다. 어느 하나 버릴 곡이 없었다. 과연 명반이었다.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음악, 강렬한 사운드, 멜로디가 뚜렷한 락 음악, 거기에 누구보다 개성이 뚜렷한 보컬 스티븐 타일러까지. 지금까지 내
기억에 에어로 스미스는 그런 팀으로 남아있다.
물론 영국, 미국에는 훌륭한 음악이 너무나 많고 나 역시 후티 앤더 블로우 피쉬, 카운팅 크로우즈, 사운드 가든, 오아
시스(그냥 생각나는대로) 등 걸출한 밴드의 음악들을 대부분 좋아한다. 하지만 70, 80년대 활동했던 밴드의 음악엔 지
금은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 당시의 '정서'라 보면 정확할 거다. 얼마 전 영화 <파이터>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진 건
바로 그 음악들 때문이었다. 영화에는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에어로 스미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같은 예전
거장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세 곡만 뽑아 본다.
디키(크리스찬 베일)가 교도소 동료들과 HBO의 '사기'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 장면. 잠자리에서 일어난 미키(마크 월
버그)는 체육관으로 향한다.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를 한다. 링 위에서 스텝을 밟는다. 감옥에 있는 디키도 습관처럼 몸
을 움직인다. 풋 웍을 하며 주먹을 뻗는다. 미키, 조깅을 한다. 후드 티를 입은 미키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간다.
명장면이다. 이렇게 두 사람이 교차하는 장면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Strip my mind'가 흐른다.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올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디키가 미키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슈거레이를 쓰러뜨렸다고 생각해?" 미키가 답한다. "10라운드까지 쓰러뜨리려 노
력했잖아. 형은 내 영웅이야.".. 그리고 두 사람은 마지막 게임, 챔피언 니어리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같이 달리고 줄넘
기하고 주먹을 주고 받는다. 키스 리차드의 기타소리가 들린다. 믹 재거가 노래한다. 이 장면에 '레전드' 롤링 스톤즈
의 'Can't you hear me knocking'이 흐른다.
미키와 디키, 디키와 미키는 니어리와의 경기가 있는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장내 아나운서 멘트가 들리고 관중의 야유
와 함성이 가득하다. 디키가 미키의 주먹을 받아준다. 미키가 가볍게 몸을 푼다. 장내에 화이트 스네이크의 'Here I go
again'이 흐른다. 디키가 흥얼거린다. "Here I go again on my own. Going down the only road I've ever known.
Like a drifter I was born to walk alone. And I've made up my mind." 미키도 같이 흥얼거린다. "I ain't wasting no
more time." 그렇게 흥얼거리며 메사추세츠 로웰의 복서 미키 워드는 링으로 올라간다. 관객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역
시 영화와 함께 올리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파이터>의 멋진 음악들, 한곡, 한곡이 영화의 장면들과 어우러져 감동을 더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OST는 국내에 발
매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곡들을 한 장의 음반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음악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파이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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