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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화차> 흥미진진한 스릴러, 아쉬운 마지막 10분



개봉일 : 2012년  3월  8일

<화차>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다. 문호(이선균)와 결혼을 약속한 선영(김민희)이 문호의 시골집에 인사하러 내려가던 길에 휴게소에서 실종된다.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형 종근(조성하)에게 선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종근이 선영을 찾아나선다. 많이 알려진대로 <화차>는 80년대 일본 소설
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80년대 일본의 작품을 2012년 한국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그려냈다. 작품은 성공적이다. 변영주의 <화차>는 영화적 재미를 제대로 갖춘 흥미로운 스릴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완벽하게 스크린에 몰입했다. 변영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간 작품 활동을 안 한건 아니지만 내 기억에 변영주는 2002년 작품 <밀애>의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변영주가 들고 나온 <화차>는 그녀의 '와신상담'을 그대로 보여줬다. 요사이 미디어를 통해 근래 몇 년의 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화차>는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문호, 선영, 종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긴장감있고 속도감있는 진행, 한 시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감독의 연출력까지 영화는 관객이 좋아할 요소들로 가득하다. 이는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대체로 동의할 내용이다. 다만 결말만 제외하고 말이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결말에 관한 아쉬움이다. 영화를 보고 일어서는 관객들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보였다. 의아한 얼굴도 있었다. 쓴 웃음을 짓는 이도 있었다. 결말이 문제였다.




그 장면에 무슨 대사가 필요했을까. 문호는 아무 말 없이 선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눈빛을 번갈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날 사랑하긴 했냐?"는 문호의 한 마디로 숨차게 달려온 '스릴러'의 긴장감이 모조리 깨져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신파가 되어버렸다."고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선영은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었어." 이 대사는 "살고 싶었어."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했을 때 관객은 선영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선영은 행복 따위를 생각할 인물이 아니다. 그저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이다. 그랬기에 경선이 아닌 선영으로 살아가려 했으며 그랬기에 선영에서 다시 한번 다른 이의 인생을 훔치려 했던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고 곧 떠오른 영화가 <한니발>과 같은 영화였다. 살인마 렉터(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을 쫓는 수사관을 뒤로 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미스테리하고 멋진 결말이다. <화차>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끝을 맺었으면 훨씬 큰 여운이 남았을 것이다. 아무 말없이 보내주든지 아니면 "가라." 한 마디 정도만 들어갔으면 더없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변영주가 어떤 생각으로 이와 같은 결말을 그렸는지 또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갖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컷이 몇 개 있다. 영화 초반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온 문호는 선영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다. 그리고 커피를 자동차 본넷 위에 올려 놓는다. 비가 오는 상황이다. 뚜껑이 열린 종이컵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곧 벌어질 비극을 암시하는 컷이다.
선영과 경선이 함께 한 펜션. 핏물 속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한다. "나비는 위기가 닥치면 더 크게 날갯짓을 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그 나비는 선영, 그리고 경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호는 수의사다. 선영은 핏물 속의 나비이기도 하고 문호가 돌보는 유기견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 선영의 가죽 가방은 다소 아쉽다. 이전 여행에서 그녀에게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필요했다. 마지막 여행에서도 동일하게 그와 같은 가방을 끌고 갔으면 관객에게 여행의 목적이 확실히 전달되면서 또 한번 공포를 선사할 수 있었다. 관객은 그녀의 가죽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방 또한 그에 맞는 가방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대부분 관객은 <화차>를 높이 평가하고 응원하고 있다. 그와 같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무엇보다 원작 소설이 궁금해졌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떤 영화보다 원작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화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