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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범죄와의 전쟁, 이 나라를 살아가는 처세에 관한 영화




개봉일 : 2012년  2월  2일




<범죄와의 전쟁>이 5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두 주 전에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최민식이 출연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미 수많은 관객이 관람한 작품, 갖가지 화제를 낳은 작품이기에 늦었지만 극장을 찾아 관람했다. 영화의 배경은 90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직후의 부산이다. 세관공무원 최익현(최민식)은 당시 웬만한 공무원이 그러하듯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챙기며 사는 비리 공무원이다. 우연히 마약을 손에 넣은 최익현은 마약을 처분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를 만나게 되고 최형배와 의기투합해 조직을 키워나간다.


영화는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캐릭터와 드라마가 좋은 영화를 좋아하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는데 최익현과 최형배 이외에 라이벌 조폭 김판호(조진웅), 검사 조범석(곽도원), 최형배의 오른팔 박창우(김성균) 등 영화에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캐릭터가 넘쳐난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에 주목할 만하다. 인기 웹툰 <이끼>에서 이장 천용덕은 아들에게 "세상을 알려면 경찰만한 직업이 없지."라며 아들을 경찰로 만든다. 비슷한 의미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를 배우는데 공무원만한 직업이 없다. 비리 공무원으로 세상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최익현의 처세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교과서다. 돈을 주고 보직을 사고 돈을 주고 승진을 한다. 최형배를 소개받은 자리에서는 경주 최씨 충렬공파를 언급, '본과 파'로 혈연관계를 찾아내는 센스를 발휘한다. 





최익현은 경찰서에 연행되어서도 당당하다. 자신에게 반말하는 형사의 뺨을 때리며 "서장 어디 있어!"라며 호통을 친다. "내가 너희 서장과 밥도 먹고 사우나도 하는 사이야."라며 형사들에게 자신을 과시한다. 놀라운 건 그 상황에 형사들이 주눅들고 오히려 최익현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이었다.(영화를 보며 그 순간 최익현이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 속에서 최익현은 승승장구한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장면이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혼탁했던 당시에는 그랬을 수 있다. 인간관계를 앞세운 최익현 처세의 압권은 최형배가 풀려나는 장면이었다. 최익현은 경주 최씨 종친회를 이용해 부장검사로 있는 최주동 검사(김응수)를 만나고 그에게 청탁을 한다. 최주동 검사는 경찰에 전화를 넣어 구체적인 사건처리 방법까지 지시하고 최형배는 석방된다.

윤종빈 감독은 혈연과 인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대한민국을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최익현의 인맥권력을 단적으로 압축한 대사가 있다. 궁지에 몰린 최익현이 김판호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수첩을 흔들어 보이며 "이게 10억짜리 전화번호부다."라고 말한다.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한 마디다. 최익현은 공권력에 줄을 대고 있는 '약자'인 동시에 '토호'이기도 하다. 윤종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화는 토호를 비판하기도 한다. <도가니>와 같은 영화에서 비판하는 것도 토호다. 토호는 지방의 행정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과 '호형호제(이들은 유사가족이다.)'하며 그 지역을 지배한다. <이끼>에서 검사는 유해국에게 "어떤 공권력도 토호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토호는 중앙권력도 손댈 수 없는 불멸의 권력이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이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대하는 모습에서 보인다. 최익현 자신은 비루한 비리 공무원이지만 가족만큼은 끔찍하게 챙긴다. 영화 초반 여동생이 결혼한다며 남자를 데리고 오자 최익현은 집을 마련하라고 통장을 내준다. 아내가 "오빠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그게 어떻게 모은 돈인데."라며 편치 않은 마음을 드러내지만 최익현은 아랑곳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며 영화 <대부>나 마피아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와 같은 맥락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밖에서는 남의 돈을 강탈하고 폭행, 살인을 일삼는 게 마피아지만 집안으로 돌아오면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는 게 그들이다. 

최익현이 평생을 살아오며 얻은 교훈으로 아들에게 남겨(아들이 선택하게 되는)지는 것이 아들의 직업이다. <이끼>의 이장이 아들을 경찰로 만들 듯 최익현은 아들을 검사로 만든다. 대한민국이라는 '아수라'를 살아가는데 검사만한 직업이 없음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실정법을 모두 초월한 권력을 가진 존재, 그 권력으로부터 '핍박' 받았던 최익현은 결국 아들에게 그 권력을 상속케 한다. 이 부분에서 감독의 위트가 나오기도 한다. "요새는 성적 좋은 애들은 법원이나 로펌으로 가잖아요. 요즘은 검사 재미없는데." 최익현을 수사했던 조범석 검사의 대사다. 여러모로 흥미롭다. 검사가 재미없어진 게 분명한 현실이지만 최익현에게 그런 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를 기억하는 그에게 '검사'는 궁극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최익현은 영화 내내 '힘'과 '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같은 핏줄이자 동업자인 최형배를 두고 하는 검사와의 거래다. 그리고 목숨을 건 그 거래에서 최익현이 승리한다. 노을이 지는 인상적인 역광 속에서 최익현이 중얼거린다. "내가 이겼어."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아수라' 속에서 결국 최익현이 승리했다. 그렇게 최익현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까지 지켜냈다. 그의 처세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성공적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렇게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살아가는 법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