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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부러진 화살> 정지영, 안성기, 아름다운 영화인들에게 감사하며




개봉일 : 2012년  1월 19일


<남부군>, <하얀전쟁>이라는 굵직한 영화를 만들었던 정지영 감독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 개인적으로 정지영 감독을 생각하면 최민수, 강수연이 출연했던 <블랙잭>을 먼저 기억하는데 사실 저런 정치적인 영화가 대표작인 감독이다. 신작의 제목은 <부러진 화살>,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교수가 자신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발사'해 상해를 '입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마침 사회적으로 사법부가 비판을 받는(언제는 그렇지 않았겠느냐만은) 시점, 이 영화가 너무나 궁금했다. 근래 어떤 영화가 이렇게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개봉일은 19일이지만 12일 시사회에서 먼저 접하게 됐다. 유난히 기대되고 흥분됐다. 마침 그날 오전에 대법원이 전국 법원의 공보판사에게 영화와 관련한 대응 매뉴얼을 발송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에 대단히 불편한 영화다.

영화를 보며 곧 당시 석궁 사건이 떠올랐다. 언론은 "김명호 교수가 판사에게 석궁테러를 가했다."고 보도했다. 법원은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다. 김명호 교수는 화살을 쏜 적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처음부터 '테러'라는 용어로 사건을 규정했고 언론은 법원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했다. 나 역시 당시 '교수가 너무했네.'라고 생각하며 어느 또라이 교수의 일탈행위로 쉽게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언론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언론이 국민을 어떻게 속이는지 새삼 생각했다. 




영화 속 재판 과정은 시종 관객을 분노케 한다. 정말 저렇게 재판이 이루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법리 논쟁이라 할 게 없다. 검찰은 피고의 유죄를 증명할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피고 측에서 피고의 무죄를 증명해 줄 혈흔 검사(옷에 뭍은 피가 박봉주 판사의 피와 동일한지 확인하는)를 요구하지만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가 혐의를 벗을 수 있는 모든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애초에 검사와 판사가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가는 재판이다. 알려진 대로 극중 석궁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극중 박봉주 판사는 정봉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렸던 현재 의정부 지방법원장 박홍우 부장판사다. 그는 자신을 찾아와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말하는 김명호 교수를 함정에 몰아넣고 사법적으로 살해한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다. 영화는 박홍우가 제시한 피 뭍은 속옷이 병원에서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속옷엔 피가 있고 셔츠엔 피가 없으며 그 밖에 입은 자켓에는 피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단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영화에 따르면 경찰, 검찰, 법원 모두가 한 패거리다. 부장판사 한 사람을 위해 이 모든 국가 시스템이 한 편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아니 아주 허술하고 어설프게 움직인다. 이 영화를 본 후 사건과 관련한 여러 자료를 찾아봤는데 참으로 악랄한 이 나라의 공권력, 사법시스템이다.





영화에서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법은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만 법대로 하지 않는 판사가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법정에서 판사에게 "왜 법대로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실제로 재판은 정말 '개판'으로 진행된다. 모든 게 판사 마음대로다. 판사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고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한다. 실제로 이랬을까 싶은데 정지영 감독은 실제 재판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는 사실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실제 다른 사건들의 사법 피해자들이다. 영화를 보며 그들이 느꼈을 울분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나라의 법은 결코 약자의 편에 있지 않다. 스스로 법전을 들여다보며 공판에 임하던 김경호가 거듭 '판사'라는 벽에 부딪치며 참다 참다 "이건 독잽니다."라고 외친다. 사법 독재국가, 판사는 독재를 하는 정치인처럼 제 마음대로 한다.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박준 변호사(박원상)는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만들고 법원을 몰아붙이려 한다. 신문과 방송이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이에 대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지만 법원의 압력으로 결국 모두 무산된다. 사법권력의 힘이다. 실제정지영 감독 역시 이 영화를 조용히 조심스럽게 찍었다고 한다. 행여나 소문이 나면 사법부에서 방해할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심지어 그는 영화를 완성한 이후에도 사법부에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따위로 영화의 상영을 막을까 염려했다. 법원에서 그런 조치를 취하면 같은 식구들끼리 어떻게 해줄지는 뻔한 일이다. 이 나라 사법부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수치심을 모르는 기관이다.


 

<부러진 화살>은 애초에 1억원 규모의 독립영화로 기획되었다. 김경호 역할의 주연배우도 이름없는 연극배우로 캐스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정지영 감독에게 안성기 캐스팅을 건의했다. 정지영 감독은 안성기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며 "<남부군>도 <하얀전쟁>도 당신과 하지 않았나. 당신이 함께 하면 이 영화도 잘 될것 같다."고 말했고 시나리오를 본 안성기가 출연을 결정하며 영화 제작의 방향이 바뀌었다. 안성기의 합류에 따라
투자자가 붙었고 스태프 구성이 쉬워졌다. 안성기라는 이름이 더해지며 <부러진 화살>은 매끈한 대중영화의 타이틀을 갖게 됐다. 영화의 제작비는 5억이다. 정지영 감독은 안성기에게 "돈이 없다. 차비 정도 밖에 줄 수 없다."고 말했고 안성기는 이를 받아들였다. 돈도 돈이지만 이와 같이 정치적인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안성기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고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했던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문성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문성근은 모든 상식과 법리를 벗어나 있는 정치판사 신재열을 연기했다. MB 정권과 가장 격렬하게 싸워 온 '백만민란'의 문성근,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성근의 캐스팅. 더할 나위 없이 절묘한 캐스팅이다. 드러내놓고 편파적인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 피고와 변호인에게 사사건건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판사, 사법 피해자들이 접해 온 실제 판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신재열 판사(문성근)의 야비한 웃음을 관객은 기억한다. 벌써부터 문성근의 연기가 화제다. 정지영 감독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 법원을 자주 다녀 판사들의 심리를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성근 역시 "제가 욕을 먹어야 영화가 잘 된다."며 영화에 힘을 보탰다. <나는 꼼수다> 봉주 2회에 출연해 스스로 "연기가 너무 좋아졌다."며 깔대기를 들이댔는데 문성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최고의 연기자다.  




나는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도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앉아서 본다. 불이 켜지고 관객이 모두 일어나고 어수선해지지만 대체로 꿋꿋이 앉아서 배우들의 이름과 주요 스태프들의 이름까지 본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한 줄까지가 영화의 한 편이라는 생각에 그렇다. 이 영화는 워낙 감동과 여운이 컸기에 특별히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영화를 찍으며 감사했던 사람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을 그대로 넣었다. 감동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줄에 정지영 감독은 이런 문장을 넣었다. "이 영화에 참여해 준 모든 배우 여러분과 스태프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사법부를 비판하는 영화, 그 영화의 책임자로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거다.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여러가지로 힘들었을 감독의 마음이 보이는 한 마디였다. 마지막까지 감동이다.  

       

<부러진 화살>이 얼마나 흥행할 수 있을까. 일단 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과 트위터 여론도 좋다. 입소문이 흥행을 크게 좌우하는 지금의 영화시장에서 이 정도 분위기라면 괜찮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극장을 찾아 정지영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의 노고를 또 한번 확인하고 싶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