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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진중권이 말했다. "나는 사자다."




진중권의 '전설'과 같은 저서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이 있다. 조갑제가 지은 박정희 영웅담을 패러

디한 제목의 책이다. 이 책에서 진중권은 조갑제, 이문열, 이인화, 박홍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보수인사들

을 명랑, 쾌활하게 조롱한다. 진중권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름 가운데 <조선

일보> 이한우 기자가 있다. 어제 <조선일보>를 보니 이 사람이 정봉주와 진중권을 묶어서 칼럼을 썼다. 진중

권이 이에 관한 코멘트를 해서 보게 됐는데 예나 지금이나 참 수준이 저렴하다. 오로지 특정 의도와 맥락을 위

해서만 글을 쓴다. 따라서 글의 수준은 처참하리만치 형편없다. 여하튼 진중권이 오랜만에 이한우를 언급해

줘서 나도 오랜만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꺼내 본다. 지금 봐도 훌륭한 '명저'다.



이 책을 보며 새삼 느끼지만 이 사회에서 진중권의 효용은 확실히 이런 데 있다. 극우라고 하지만 사실 극우와

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희안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진중권만한 인물이 없다. 논

리적으로 따박따박 발라주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명문이다. 당시 약이 오른 이문열은 "검도 1단의 실력으로 검

도 9단에 덤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글의 공방을 통해 시쳇말로 '떡실신'한 쪽은 누가 봐도 이문열이었

다. 그 중심에 진중권의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는'이라는 <중앙일보> 칼럼이 있었다.



                                    


진중권의 그런 역할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비슷하다. 그가 상대하는 이름이 조갑제, 이문열에서 변희재나 강

용석 같은 이름으로 변했을 뿐이다. 아니 추가됐다고 해야 하나. 진중권이라는 인물이 언제나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인물이기에 때로 진보 성향의 네티즌으로부터 공격당하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쨌

든 저쪽의 이른바 '수구 꼴통'을 상대함에 있어 그가 최고의 선수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꼼수다>가 아무리 대중의 지지를 받아도 그는 <나꼼수>에 대해 할 말을 한다. 그로 인해 어떤 욕을 먹더라도

한다. 그렇다고 이쪽 편이 아닌 건 아니다. '수구'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이쪽 진영의 가장 든든한 우군

이다. <나꼼수>에 관해 말하면서도 <나꼼수>가 공격 받으면 <나꼼수>의 편이 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진중권이 어제도 트위터를 통해 히트작을 남겼다. 이름하여 "나는 사자다." <나꼼수>가 부럽냐는 말에

"사자가 낙타를 부러워하겠어요?"라며 <나는 꼼수다>를 낙타로 자신을 사자에 비유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낙타는 타고 있는 사람이 가자는 쪽으로 간다. 즉 <나꼼수>는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며 대중이 원하는 방향

으로 가는 사람들, 하지만 사자는 누구도 탈 수 없으며 따라서 누군가가 원한다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도 않

는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사자라는 말이다. 비유가 워낙 황당해 그냥 웃고 말았다. 요즘 자신이 미남이라는

농담을 꽤나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하더니 농담의 '수위'가 굉장히 높아졌다. 





먼저 <나꼼수>가 낙타이며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말, 이건 박권일의 생각이기도 한데 박권일 역시

"김어준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이쪽 사람들의 인식은 놀라우리만큼 일치한다. <나

꼼수>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김어준과 <나꼼수>는 그들 표현대로 하면 자신들 마음대

로 '씨부린다.' 누군가 방송을 들으며 불편한 부분(욕설, 큰 웃음소리 등)을 지적하면 한 마디로 끝낸다. "그럼

듣지마!" 김어준의 철학은 분명하다.


늘 말하는대로 그는 노빠다. 노무현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다. 그의 정치적 코멘트는 노무현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난 <뉴욕타임스>에서 그는 자신이 야권의 승리에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김어준의 이런 말과 행

동은 대중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그 스스로가 강렬히 원하는 것이다. 이런 김어준에게 "김어준

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긴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기 마련이니 진중권이나 박권일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진중권의 "나는 사자다."는 보면 볼수록 웃긴다. 일단 진중권은 누가 봐도 진중하다거나 무겁지 않다. 묵직함

과 가벼움의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박한 쪽에 가깝다.(진중권과 비슷한 선에 놓을 수 있는 강준

만, 고종석, 박노자와 같은 지식인을 생각하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진중권 특유의 비꼬고 조롱하는 말과

글이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인신공격성, 예의 없는 글로 돌려주는 모

습이 그를 더욱 가볍고 경박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너무나 맥아 닿지 않아 나는 처음에 그가 '死者'를 말하

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진중권은 자신의 '전투력'을 생각하며 사자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 이거라면 그나마 조

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봉도사의 공격에) 대응했으면 봉도사님 벌써 돌아가셨겠죠."라고 말하기

도 했다. 그런데 그 '전투력' 맥락을 감안한다 해도 들어주기 민망한 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다. 농담은 농담으로 들을 수 있는 맥락에서 해야 한다. 진지하게 저런 표현을 하니 그저 황당

하고 어이없을 뿐이다.   





'사자' 비유를 보며 곧 이문열이 떠올랐다. 이문열이라는 대작가가 고작 진중권이라는 젊은 지식인에게 쳐 맞

고 한다는 소리가 겨우 "검도 1단의 실력으로 검도 9단에게 덤빈다."는 말이었다. 진중권에게 디테일하게 조목

조목 깨지고 약이 올라 이름값과 권위로 누르려고 한 말일 거다. (진중권은 변희재에게 맞진 않았지만) 이건

진중권이 변희재에게 '듣보잡'이라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진중권은 자신이 정봉주보다 지적인 면에서 우월하다 생각하고 (이한우 말처럼) 정봉주에게 깨지지도 않았으

므로 약이 오를 건 없다. 다만 이전 정봉주의 말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나꼼수> 팬들이 지속적으로 하

는 "부럽냐?" 류의 말들(그리고 BBK와 곽노현 사안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기에 '사자와

낙타' 비유를 하고 정봉주 관련 발언을 한 게 아닌가 싶다. 확실히 진중권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이다.



<나는 꼼수다>와 김어준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진중권은 참 애매하긴 하다. 진중권의 말이 맞는 부분

도 있기에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비난, 비판하는 것도 찜찜하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정

치적으로 <나꼼수> 편에 서고 싶으니 당분간은 <나꼼수> 쪽에 무게를 두고 함께 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 생각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