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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배트맨> 팀 버튼 스타일의 슈퍼히어로 명작




개봉일 : 1990년  7월  7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등장한 이후 팀 버튼의 <배트맨>은 잊혀진 듯하다. 팀 버튼과 마이클

키튼의 자리 역시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뉴 스타의 <배트맨>이 차지했다. 팀 버튼과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을 기억하는 팬들도 그럴진대 그 당시의 <배트맨>을 모르는 영화팬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팀 버튼의 89년 '슈퍼 히어로' 명작 <배트맨>을 봤다. 확실히 요즘 영화들에 비해 템포가 느리고 호

흡이 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에 익숙한 영화팬이라면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팀 버튼이다. 그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판타지와 공상, 비현실의 세계를 그리는 감독

답게 <배트맨>에도 그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영화가 시작하고 배우들의 이름이 지나간다. 순간 잘못 봤나 싶었다. 처음으로 나오는 이름이 잭 니콜슨이다.

이런.. 영화가 <배트맨>인데 브루스 웨인이 아니라 조커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는데 당

시 상황이 그랬다. 마이클 키튼의 이전 작품 <비틀 쥬스>의 캐릭터를 기억하는 <배트맨> 팬(주지하듯 <배트맨

>은 DC 코믹스의 유명 만화가 원작이다.)들이 마이클 키튼을 결사 반대했다. 제작사가 밀어붙여 마이클 키튼

이 브루스 웨인에 낙점되긴 했지만 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조커에 중량감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그래서 캐스

팅된 배우가 잭 니콜슨이다. 물론 잭 니콜슨은 개런티도 가장 많이 받았고 러닝 개런티까지 챙긴 것으로 알려

졌다. 정황을 보면 조커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타이틀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보다 잭 내피어와 그가 사고 후 갖게 되는 이름 조커의 이야기이면서 비키

베일(킴 베이싱어)의 이야기다. 영화는 잭이 그의 보스 그리썸(잭 팔란스)을 살해하고 보스가 되는 과정, 그리

고 사진 기자 비키 베일(킴 베이싱어)에게 구애하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와는 많이 다르다. 팀 버튼의 시리즈는 딱히 선과 악이라는 담론을 다루지 않는다. 물론 조커는 나쁜 놈

이지만 브루스 웨인이 나쁜 놈을 단죄하며 고뇌하는 모습 따위는 그리지 않는다. 놀란이 자신의 시리즈에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인간 본성에 관한 담론을 다뤘다면 팀 버튼은 그저 판타지 속의 고담 시티와 배트맨,

조커를 그린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검사 하비 덴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그냥 스쳐

간다.  





히스 레저의 조커 이후 잭 니콜슨의 조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 섬짓한 조커를 기대하

는 것도 우습지만 여하튼 히스 레저에 비하면 잭 니콜슨은 시종 우스꽝스런 악당, 희화화된 캐릭터다. 자신의

보스를 살해하는 장면이나 비키 베일을 만나는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켜놓고 춤추는 모습들은 조커의 캐릭터

를 그대로 보여준다. 팀 버튼의 팬이 아니라면, '진지함'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고 탐탁치 않

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나 역시 요사이 수 년간 나온 그의 작품들 가운데 <스위니 토드> 정도를 가장 좋아하는

데 이 영화에 그의 색깔이 제대로 묻어나기도 하지만 팀 버튼 특유의 '지루함'이 '덜'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팀 버튼 <배트맨>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비키 베일 역할의 킴 베이싱어의 캐스팅이다. 지금도

멋지지만 당시 30대의 아름다운 킴 베이싱어가 연기하는 비키 베일은 브루스 웨인과 조커 사이를 오가며 영화

의 재미를 훌륭하게 살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에는 뚜렷한 주제와 강렬한 드라마가 있었기에 딱히

여성 캐릭터 따위가 필요없었다면 팀 버튼 버전에는 어떤 포인트가 필요했는데 그 지점을 킴 베이싱어가 적절

하게 채워줬다. 물론 팀 버튼의 팬이라면 그런 요소 없이 그의 스타일만으로 만족하겠지만 분명히 팀 버튼은

드라마가 약하기 때문에 다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드라마, 또는 색다른 캐릭터가 필요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에 이르러 다른 차원의 히어로 무비가 되긴 했지만 팀 버튼 버전의 <배트맨>이 만화로부터 이

어져 내려온 <배트맨>을 전설로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팀 버튼의 팬이든 그렇지 않든 어느 쪽에서든

영화적 재미를 흠뻑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슈퍼 히어로 무비 <배트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