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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원작과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프리퀄




개봉일 : 2011년  8월 17일




개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와 같은 방대한 분량의 SF 시리즈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저 위대한

<에일리언> 시리즈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엑스맨>에 대해 갑자기 흥미를 가지게 됐

는데 올해 개봉된 <엑스맨 : 퍼스트클래스> 덕분이었다. 프리퀄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의 기원을 보여주는 영

화, 요즘은 리부트라고도 부른다. 원작의 설정, 내용을 많이 벗어나 기본 골격만 비슷할 뿐 사실상 원작과 거

의 다르게 만들어진 영화를 일컫는 말로 프리퀄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다.



비슷한 프리퀄 영화가 올 여름 또 하나 개봉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다. 68년 프랭클린 샤프너의 고

전, 찰턴 헤스턴이라는 배우와 함께 널리 알려진 명작 <혹성탈출>이 모태가 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물론이고

2001년 팀 버튼이 만든 <혹성탈출>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엑스맨 : 퍼스트클래스>와 마찬가지로 왠지 이

번에 개봉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는 흥미가 생겼다. 시리즈의 기원을 알려준다는 사실에 혹 하기도 했

지만 예고편에서 보여지는 내용이 묘하게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만들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 그 탐욕이 낳는 비극.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고 진행도 속도감있게 달

려간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 별다른 대사 없이 원숭이, 아니 유인원과 인간의 전투 장면만이 묘사된다. 어

찌보면 지루하고 내용 없다는 네티즌의 악평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악평 몇 마디로 끝내기

에 영화는 꽤 괜찮은 메시지를 간단 명료하게 던져준다.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알츠 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버지 찰스(존 리스고우)를 위해 유인원을 이용한 치

료제를 개발 중이다. 윌은 연구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미에게서 나온 아기 원숭이 시저를 집으로 데려와

연구를 진행한다. 영화의 흐름은 시저가 동물보호소에 갇히면서 바뀐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시저는 보

호시설에서 유인원에 대한 인간의 학대를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종족이 인간들의 실험을 위해 제약사

의 실험대상으로 함부로 쓰인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영화의 포인트는 이 지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시저는

AZ-113을 이용해 유인원을 일깨우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유인원의 대 인간 전투에 나선다.





이 영화에는 이전 <혹성탈출>에서 보여줬던 유인원이 지구를 지배한다거나 하는 거대담론은 없다. 후속편이

나온다 하니 다음 영화에서 그런 내용이 그려질거라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다만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살려내 공원을 만들어 돈을 벌려던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비극을 다뤘듯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역

시 원숭이를 이용해 알츠 하이머 치료제를 만들어 큰 돈을 벌려는 인간의 탐욕, 인간의 잔인함을 조명한다. 어

떤 경우에도 인간을 해치지 않으며 시종 '이성적'인 모습으로 인간과 유사하게 묘사되던 시저는 결정적인 순

간에 분노로 가득차 인간을 응징한다. 인간이 창조한 생명체 시저는 지능 뿐 아니라 감정까지 인간과 '동일하

게' 가진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Ceasar is home."이라는 인상적인 대사와 함께 대사 가운데 흥미로운 한 마디가 있다. 윌의

아버지 찰리가 이웃집 남자의 차에 올라타 주차해 있던 앞 뒤의 자들을 들이 받자 그 남자가 흥분해 말한다.

"난 파일럿이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 영화를 보다가 의아했던 부분이다. 도무지

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사가 왜 필요했는지 영화 마지막에 설명된다. 그리

고 그 이웃 남자를 통해 속편의 내용이 암시된다. 어찌보면 참 촌스러운 설명이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CG다. <아바타>를 계획하던 제임스 카메론은 <반지의 제왕>에서 골

룸을 보고 <아바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모션 캡쳐에 관한 이야기다. <킹

콩>과 <아바타>를 지나며 기술력을 축적한 웨타 디지털의 기술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감탄케 한다. 원숭

이를 묘사하는 일은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바타는 상상의 캐릭터로 어떻게 그래내도

관객은 그런가보다 하고 보지만 원숭이는 그 외형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기에 사실적으로 묘사하기가 쉽지 않

은 대상이다.(동일한 맥락에서 예전에 심형래는 로보트 표면을 만드는 일과 뱀의 비늘을 만드는 과정을 비교

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면 이 영화에서 창조한 원숭이들이 얼마나 훌륭한가 알 수 있다. 물론 영화

속 시저를 연기한 모션 캡쳐 연기의 1인자,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도 평가받아야 한다. 메이킹 영상에서 보이

는 그의 모습은 그가 왜 이 분야의 최고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엑스맨 : 퍼스트클래스>와 더불어 근래 만들어진 가진 괜찮은 프리퀄이다. 원작

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영화를 복잡하지 않게 그리고 재미를 느낄 수 있

도록 만들었다. 물론 원작을 전혀 몰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점이 큰 장점이기도 하다. 영화적 재

미, 완성도와 함께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