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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L.A. 컨피덴셜> 영화사에 남을 필름 느와르 걸작




개봉일 : 1998년  3월  7일


1998년 70회 아카데미는 <타이타닉>의 잔치였다. 당시 <타이타닉>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한국에서도 그 열풍

은 예외가 아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14개 부문의 후보로 올라 감독상, 작품상 등 11개 부문에

서 수상했다. 국내 언론도 연일 <타이타닉>의 국내 흥행기록과 그 열풍에 대해 보도했다. 그 해 아카데미에는

<굿 윌 헌팅>, <부기 나이트>와 같은 좋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타이타닉>의 참사 속에 전혀 빛을 보지 못했

다. 그 가운데 불운의 걸작 <L.A. 컨피덴셜>이 있었다. 





한국에서 묵직한 내용의 범죄 느와르는 흥행이 어렵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타이타닉>의 파도 속에 더

욱 그랬다. <L.A. 컨피덴셜>은 전혀 주목 받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거의 관심 밖에 있었지

만 이 영화는 미국 비평가들이 주는 상을 휩쓸며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화제작이다. 개인적으로 수차례 봤

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이다. 느와르의 걸작을 말하면 쉽게 떠오르는 작품이 로만 폴

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인데 그 다음으로 나와도 좋을만큼 <L.A. 컨피덴셜>은 훌륭하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L.A.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들에서 흔히 보이는 총과 마약,

갱이 등장하고 그에 맞서는 부패 경찰과 검찰도 나온다. 영화 후반부 경찰 반장이 L.A.를 '천사의 도시'라 표현

하는데 함축하는 바가 있는 표현이다. 영화는 미디어에 노출되기를 즐기는 스타 경찰 잭 빈센스(케빈 스페이

시)와 여자를 구타하는 남자만 보면 이성을 잃는 열혈 형사 버드 화이트(러셀 크로우), 그리고 오로지 출세만

이 관심사인 정치 경찰 에드 엑슬리(가이 피어스)의 이야기다.

 

         


영화는 당시 경찰 사회의 흥미로운 부분을 보여준다. 하나는 자경단에 가까운 공권력이다. L.A. 경찰국의 더들

리 반장(제임스 크롬웰)은 유죄라 확신하는 용의자를 잡기 위해서는 증거도 조작해야 한다고 믿는 경찰이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용의자를 구타할 수도 있고 상습범은 뒤에서 총을 쏴서라도 응징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경찰이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신념에 부합하는 경찰이 바로 버드 화이트다. 영화에서 경찰 간부이면서 범

죄조직까지 접수하려는 더들리 반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L.A. 컨피덴셜>은 공권력과 범죄조직의

공생관계를 그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디어와 경찰이다. 잭 빈센스는 <영광의 배지>라는 경찰 드라마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극중 경찰

역할 배우가 진짜 경찰처럼 보이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방송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라면 동료 경찰을 밀고할

정도로 그는 <영광의 배지>라는 쇼에 집착한다. 그에겐 경찰 업무도 쇼의 연장이다. 현장에 나가면서 황색잡

지의 기자를 대동하고 사전에 카메라와 플래쉬의 위치까지 조율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때 역시 경찰(검찰)

의 공무집행은 상당부분 대중에게 보여지는 '쇼'라는 사실을 영화는 묘사한다. 





한국영화 <부당거래>에서 건달들은 시종 '보험'이라 표현하며 경찰과의 대화를 녹음하고 비디오도 찍는다. 유

사시를 대비한 '거래' 도구다. <L.A. 컨피덴셜>은 이와 같은 고리를 세련되고 멋드러지게 묘사한다. 범죄조직

의 목을 죄는 시의원은 (범죄조직에 소속된) 창녀와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사진으로 협박하고, 함정을 파서

남자 배우와 동성애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해 검사 또한 동일하게 협박한다. 영화는 공권력의 어느 선까지 범

죄조직과 커넥션이 있으며 어떤 자들까지 그들이 협박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상이 다 그런거지.'라며 관객

은 자조한다.   



<L.A. 컨피덴셜>은 명감독에 명배우들이 어우러진 환상의 조합이다. <요람을 흔드는 손>, <리버 와일드> 정도

가 알려졌던 커티스 핸슨. <L.A. 컨피덴셜>은 감독에게 평생 한 번이나 있을 법한 걸작이다. 이 영화로 그는 자

신의 이름을 영화팬들에게 뚜렷이 각인시킨다. 영화는 케빈 스페이시,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까지 단독으

로 드러나는 주연 없이 세 명의 배우가 비슷한 비중으로 끌어간다. 밀도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훌륭한 배우들

이 처음부터 끝까지 채우는 스크린은 영화보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대니 드 비토와 제임스 크롬웰이라는 관록있는 배우들도 영화에 힘을 더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포인트는 팜

므파탈 킴 베이싱어다. <나인 하프 위크> 이후 자신만의 섹스 어필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배우.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

상한다. 수상 당시 식장에는 "20여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처음 아카데미를 수상했다."는 멘트가 나온다.

감격한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커티스 핸슨'이라는 이름을 세 번이나 연이어 부르며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뭉클한 장면이다.(최고의 필름 느와르 <차이나타운>의 주연 잭 니콜슨이 일어나 킴 베이싱어를 축하하는 모

습도 보인다. 흥미로운 장면이다.)  



<L.A. 컨피덴셜>은 앞서 언급한 여우조연상 외에 각색상을 수상하며 오스카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작품에 비해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리고 <타이타닉>도 매우 훌륭한 영화지만 <L.A.

컨피덴셜>을 좋아하는 영화팬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타이타닉>은 엄청난 돈을 벌었으니 작품상, 감

독상 정도를 <L.A. 컨피덴셜>이 수상하며 아카데미의 명예는 커티스 핸슨과 제작진이 얻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든다. 아카데미도 흥행도 두고 두고 아쉬운 걸작 <L.A. 컨피덴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