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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Media & Culture

<빌리티스의 딸들> 이 땅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일




옴니버스 영화 <러브 액츄얼리> 다니엘(리암 니슨)의 에피소드. 다니엘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로 인해 슬

픔에 잠겨 있다. 그가 동일하게 슬픔에 빠져있는 어린 아들을 위로하지만 정작 아들의 관심은 자신이 좋아하

는 친구에게 가 있다. 초등학생 아들은 엄마가 떠나가 슬프기도 하지만 지금 자신에겐 이 아이가 더 큰 문제라

말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What does she, he feel about you? (그 아이는 널 어떻게 생각하니?)"

아들이 대답한다. "SHE doesn't even know my name. (그 아이는 내 이름도 몰라요.)" 아버지는 질문에 she

와 he를 같이 쓴다. 그 아이가 여자일지 남자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SHE'에 힘을 주어 말한다. 아

버지 질문의 포인트를 알고 여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별 게 아닌 게 아닌 장면이다. 동성

애를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짧고 명확한 대화다.



                                                                         
                                                                                                           영화  < 러브 액츄얼리 >



KBS에서 여성의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를 방송해 지난 주 한바탕 '말썽'이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이 공격하는

네티즌과 방어하는 네티즌들로 시끄러웠다. 우리나라는 마이너 소수자들에게 참으로 가혹한, 그들이 살아가

기 힘든 나라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가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들이다.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많이 나아

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다수는 동성애를 '더럽고 추한 것'을 넘어 '옳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를 본 비판적인 시청자 의견 가운데 "아이들의 성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

견이 있다는 데서 쉽게 파악된다. 우리 사회 다수의 구성원은 동성애자를 벌레 보듯 하며 정체성에 문제가 생

긴 정신병 환자로 취급한다. 이런 의식은 이 땅 주류 마초권력의 폭력적인 수사를 통해 더욱 공고히 자리잡았

다. 이게 왜 정치문제인지는 여성 동성애자, 즉 레즈비언을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동성애자라 해도 우리 사회

가 여성에게는 한결 관대한 게 사실이다. 남자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듣는 "사내 자식이 왜 인형을 가지고 노

냐." 류의 폭력적인 말들이 이미 마초사회의 이념을 우리 안에 강요한다.    



                                            
                                                                                               KBS 드라마  < 빌리티스의 딸들 >


우리는 문법적 착각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자.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데 거기에 반대할 수 있나. 누가 대통령이 되는 데는 반대할 수 있다. 그건

헌법이 국민 각자에게 보장한 투표의 권리로 힘의 행사가 가능하므로 "반대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면 그건 그들간의 문제지 (남녀 간의 사랑을 반대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

게) 제3자가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제3자가 거기에 관여하며 그렇게 관여하

는 행위 자체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사회 전체가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모두가 별 문제의식을 느

끼지 못한다.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사실 영화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동성애라는 소재를 접할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접하는 TV는 아직 시기상

조인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 변하는 속도를 보면 이 또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재미있는 건 동성

애를 바라보는 우리 안의 이중 잣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매력적인 남성 (대표적으로 루이비통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이 동성애자라 하면 뭇 여성들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역시 특별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

다."는 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외모도 볼품 없고 속된 말로 '찌질한' 남자가 동성애자라 하면 여지 없이 혐오

스런 그리고 어딘지 꺼림칙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 여성의 경우를 표현했지만 바라보는 이가 남성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보면 중요한 건 '성 정체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진보하는 (조금씩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회라면 다양한 소수자들이 하나 둘 양지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자는 그 최후방에 있는 소수자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참으로 멀리있는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작은 노력이 더해져 큰 변화를 가져올거라 믿는다. 아들을 향해 'He와 She'를 동시에 묻는 아버지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