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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과반 차지한 새누리당,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박근혜



지난 11일 저녁 6시,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불안했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수를 더하면 분명히 과반은 될거라 생각하며 10시 무렵까지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11시가 다가오면서 점점 불안이 현실로 다가왔다. 박빙 지역은 왠지 새누리 쪽으로 기울듯 보였고 비례대표까지 더해 새누리가 과반을 차지할 거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왔다. 새누리당 스스로도 놀라움을 감출수 없는 결과였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새누리가 152석으로 과반을 확정지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11일 밤부터 공황상태에 있던 나는 그 아침, 어떤 뉴스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4.11 총선만 기다렸던 한 사람으로 충격, 공황, 분노 등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소 회복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리 좋은 '멘탈'은 아니다. 민주당의 무능, 선거전략의 문제,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 부재 등 이런저런 분석도 많이 나왔지만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화만 났다. 많이 나온 말이지만 야권은 그렇게 국민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차버렸다.

개표방송을 보면서 <나는 꼼수다>에서 노회찬과 김어준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다. 노회찬은 "새누리가 1당, 또는 과반이 되면 이명박 대통령이 재집권하는겁니다."라고 했고 김어준은 "그렇죠. 그렇게 되면 가카는 그냥 빠져나가는거에요."라고 말했다. MB와 MB 정부에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새누리가 과반을 차지하는 1당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적잖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제도 비슷한 글이 보였지만 오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지원은 "이 의석수라면 충분히 해볼만하다."라며 그리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의견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멘탈을 다스려 보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거 전 야권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던 전망을 생각해 보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4대강, 한미 FTA, 민간인 사찰, 권력 핵심의 총체적 부패 스캔들, 결정적으로 국민 일반에 가득한 反 MB 정서까지. 좋은 재료가 넘쳐남에도 야권은 과반을 새누리에 헌납했다. 원인에 대한 분석은 새삼 쓰고 싶지 않고 그저 화만 날 뿐이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살펴보다가 약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문대성과 김형태에 관한 뉴스였는데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그들에 대한 출당을 언급한 것이다. 거기 더해 아예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하기 위해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이준석은 "과반이 무너지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가 나왔다. 놀라웠다. 그냥 언론플레이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 달라보였다. 양당이 각각 지역구 공천을 하던 시기에도 그랬다. 민주당이 공천 문제로 진통을 앓을 때 새누리는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빠르게 쳐내며 분란의 소지를 제거해 나갔다.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곧바로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김어준이 늘 말하듯 확실한 오너(대권주자)가 있는 정당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당시 새누리의 전략, 전술이 훌륭했음을 선거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지금도 그렇다. 오늘 김형태, 문대성 뉴스들을 비롯해 다양한 기사를 훓어보며 드는 느낌은 "이것 봐라? 잘 하고 있는데?"였다. 박근혜는 "민생과 관련 없는 정치투쟁은 용납 않겠다."고 했다.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과 박근혜가 똑같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볼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명박에게는 '국가'라는 관념이 없다. 그에게는 오로지 '돈'만 있을 뿐이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그에게 돈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박근혜에겐 '국가'라는 관념이 있다. 그에겐 어린 시절 지켜보던 아버지가 곧 국가였고 또한 '애국심'이라는 게 있다. 자신들에 반하면 무조건 북한과 관련짓고 종북세력 운운하는 수구 일반이 가진, 그리고 또한 박근혜 또한 가진 그러한 인식은 처참하리만치 형편없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분명히 '국가'라는 관념이 있다.(물론 그와 같은 비뚤어진 인식이 이명박의 無 인식보다 위험한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박근혜는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다수 유권자가 거기에 반응했다. 상당수 유권자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도(권력을 잡아도) 정권교체로 본다고 하니 기가 차기도 하지만 그게 저들이 만든 프레임이고 이는 확실히 선거에서 힘을 발휘했다. 일단 국민은 민주당으로의 (의회) 권력교체가 아닌 (한나라에서) 새누리로의 권력교체를 선택했다. 방송, 언론 장악의 힘이 컸다는 분석도 있지만 박근혜의 힘 또한 컸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올해 초 이미 권력을 손에 넣은 줄 생각하고 논공행상을 미리 하며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한 민주당을 보면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전략과 힘은 더욱 돋보인다. 





여기서 문득 걱정이 생긴다. 박근혜가 일을 잘하게 되는 경우다. MB 정부가 워낙 '뛰어났기에' 조금만 보여주면 확실히 돋보일텐데 그렇게 되어 중간 성향의 유권자 다수가 박근혜에게 호감을 갖는다면 대선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더구나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무능' 자체가 아닌가. 총선 전 지지율도 오로지 가카의 '은혜' 덕분에 갖게 된 것이지 그들 스스로가 보여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민주통합당은 (오직 북한 정권과 비교하며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냈던 한나라당처럼) 이전 한나라당의 비루한 존재와 가카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조금만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민주통합당은 조금도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가 없다.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그 정도로 무기력한 상황이다.     


이른 판단일 수 있지만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고 상당수 인물이 교체된 새누리당은 이전 한나라당과는 다른 정당처럼 보인다. 특별히 문대성과 김형태에 대한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물론 착각, 착시일수도 있다. 새누리당은 변할 수 있을까. 조금만 변하면 민주통합당과 차이가 없을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민주통합당은 무엇을 가지고 국민 앞에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를 보며 새삼 느낀다. 정말 대단한 박근혜와 새누리당, 참으로 딱한 민주통합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