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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이종걸의 '그년' 발언, 진중권과 진영논리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이 트위터에 남긴 '그년'이라는 표현이 잠깐의 회오리를 만들고 지나갔다. 이번 대선에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 대한 표현이었기에 이 표현은 유난히 화제가 됐다. 흡사 여왕에 대한 '불경죄'를 연상케 했다. 이종걸 사건은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면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진보진영의 빅마우스 진중권을 빼놓을 수 없다. 진중권이라는 이름이 '장사'가 되기에 인터넷 매체는 그의 말을 곧잘 기사로 생산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진중권은 '(국회) 제명'까지 언급하며 이종걸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고 인터넷 매체들은 그의 말을 기사화했다. "김용민 사건을 겪으면서 배운 게 없는 모양"이라는 말은 널리 퍼지면서 김용민과 간접적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진중권은 소위 '진영논리'를 혐오한다.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편 철학'이다. 물론 일리가 있다.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잘못이나 흠을 덮어주면 후에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기에 그렇다. 세상사의 원칙으로 봐도 그렇다. 잘못을 했으면 비판을 받고 그 댓가를 치르는게 맞다. 그런데 진중권은 항상 도가 지나치다. '같은 편(혹은 비슷한 편)'에 있는 사람을 공격함으로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게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곽노현 교육감 때도 그랬다. 그는 권력, 검찰보다 더욱 곽노현을 공격했다. 곽노현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결국엔 내가 옳을 것이다."를 증명하는 게 목적이라도 되는 듯 그는 집요하게 곽노현을 물고 늘어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의 논리가 수구진영에 그대로 제공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진중권이라는 이름이 진보진영의 대표선수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진중권은 '같은 편' 비판은 저들로서는 아주 좋은 무기가 된다. 진중권의 말이 확대, 왜곡 재생산되어 돌아오는 일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중권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 진중권은 그저 '진영논리' 따위에 맞서 자신의 '불편부당함'만 보여주면 그걸로 그만이다. 그런 가운데 '우군'이 어떤 상처를 입든 그건 진중권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진영논리라는 것도 그렇다. 진중권(과 그 주변 지식인들)은 진영논리를 혐오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도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지지하는, 좋아하는 쪽으로 기운다. 완전한 중립은 없다. 진중권 역시 마찬가지다. 근래 <나는 꼼수다>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 역시 그와 정치적, 심정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겐 관대하다. 지난 총선 당시 관악에서 벌어진 이정희 사태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진중권은 여느 네티즌과 다름 없이 민주통합당 김희철만을 집중 공격했다. 그리고 사건 초기 재경선을 말했다. 이때 이정희 측의 여론 조작의 정황은 분명했고 재경선은 김희철 쪽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이건 결코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떤 언론도 완벽하게 중립이 될 수는 없다고 했던가. 사람도 그렇다. 완전하게 중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김어준의 말처럼 "같이 비 좀 맞아줄 수 있는 것 아닌가."를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진영논리를 유치한 것으로 싸잡아 매도하면서 혼자만 고상한 척 하는건 우습다는 말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오만이다. 사람은 결코 완벽하게 중립에 설 수 없다. 이는 과거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과 같은 사람을 대하던 진중권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진중권은 저들이 대중으로부터 꼼짝없이 비판받아야 하는 사안 앞에서도 저들을 크게 비판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워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 문재인이나 안철수에게 닥칠 비슷한 상황 앞에서도 대중 앞에 그대로 보여질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진중권은 분명 여론을 만들 수 있는 힘있는 이슈메이커이며 든든한 우군이다. 어찌됐든 이번 대선과 관련한 뉴스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보게 될 것도 분명하다. 진중권은 자신은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확신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우매한 대중을 훈계하려 할 것이다. 타인은 쉽게 판단하면서 자신과 관련해서는 어떤 비판도 수용하지 않는 '지식인'을 바라보는 일, 꽤나 피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