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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나는 꼼수다 27회> 노회찬의 말을 들으며 드는 생각




<나는 꼼수다 27회> 떨거지 특집. 1부 녹음이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 밖에서 기다린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아무리 떨거지라도 인권이 있는데 이렇게 길바닥에 세워 두면 되나."라고 하자 녹음을 마친 김어준 총수가

"떨거지 신세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방송은 어딘지 짠하고 서글프기도 했지만 다들 왕년에

한 가닥씩 했던 인물들이기에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이 서 있고 청취자를 집중케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

이 없었다.





게스트 3인 가운데 노회찬의 이야기, 특히 작년 서울시장 선거와 단일화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노회찬의 말을 들으며 당시의 기억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그 무렵 온라인에는 "노회찬은 노원구청장에 출마

해라." 또는 "노원구청장을 하고 체급을 키우는 게 맞다."와 같은 이야기가 많았다. 듣기에 따라 수긍이 되기도

하고 발끈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사실 어찌보면 어떤 정치인이 어떤 선출직을 두고 출마한다는데 제3자가 나

서서 "당신 그릇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 아니 분명한 폭력이다. 이것이 대화와 협

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대부분 강요, 강압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때 진보신당의 전면에 나서서 싸

웠던 인물이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트위터에 "왜 우리가 꾸는 꿈을 당신들이 대신 꾸냐."며 자신들의 꿈은 노

회찬 '구청장'이 아니라 노회찬 '시장'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번 방송에서 재미있는 내용이 드러났다. 노회찬은 (자신이 완주하고 오세훈이 당선된) 당시 선거결

과에 대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단일화와 관련해 단 한 번

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 우스운 사실이다. 수많은 시민, 네티즌이 진보신당과 노회찬을 그토록 비

판했는데 정작 민주당에서는 노회찬 측에 공식적으로 제의 한번 안 했던 것이다. 당시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

보가 막판에 사퇴하면서 노회찬을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고 그 상황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론조사에서 15% 안팎으로 뒤지던 한명숙 후보, 공당의 대표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노

회찬,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진보신당의 다른 후보들, 당원들을 볼때 노회찬이 사퇴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당시 심상정 사태는 후폭풍이 커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심상정에 실망하고 크게 배신감을 느꼈

다. 그런 가운데 진중권이 심상정에 대해 트위터에 남긴 "안타깝지만 여전히 존경합니다."라는 글이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런데 지난 방송에서 노회찬이 한 말을 정리해 보면 진보신당의 '강경한' 당원들, 지지자들이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노회찬은 한명숙과 자신이 단일화하지 못해 한나라당에 패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

한다. 진중권도 그렇고 이른바 진보 인사들이 '사표' 논리에 분노하고 "진보의 싹을 죽이지 말라."며 출마에 의

의를 두는 이전 사례를 보면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노회찬의 말은 놀랍고 신선했다. 노회찬은 어정

쩡하게 '단일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단일화'와 '교훈'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리며 강조했다. 그러면

서 지난 보궐선거에서 단일 후보가 나섰으면 이겼을 곳을(이 말은 이미 한나라, 즉 가카 이외의 진영은 한 편

이라는 논리 - 진중권 부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 - 를 품고 있다.) 거론하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입에

선 단일화의 중요성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또한 이 싸움에서의 승리를 '정의'의 승리로 표현하기도 했

다. 유시민이 하면 어울릴 법한 말이 노회찬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진중권이 방송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들

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또한 MB 정부를 '거악'으로 표현한 유시민의 연설을 보고 "토할 뻔 했

다."는 허지웅 같은 이는 노회찬의 말을 어떻게 들었을지도 궁금하다. '노회찬도 맛이 갔군.' 한 마디로 정리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날 방송에서 특별히 중요한 내용 가운데 "정치세력이 실제로 권력을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기

억난다. "법률 한 줄을 바꾸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진보라 하는 사람들은 적은 소득, 명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당장 작년 지방선거를 보자.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후보는 일찌감치 단일화에 응하며 물러났다. 트위터에서는 "당신들의 결정에 감동했

다.", "눈물난다."는 글이 넘쳐났다. 정당투표는 민주노동당에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민주노동

당은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단일후보 자리를 얻어내 인천에서는 구청장까지 탄생시켰고 광역의원 24명, 기

초의원 115명이라는 성적을 얻었다. 당시 이런 결과를 보며 민주노동당의 전략이 훌륭하고 대단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물론 언론의 평가도 좋았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한나라당에 빼앗긴 상황에서 가장 많이 챙긴

쪽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이게 바로 진보의 세를 확장하고 외연을 넓히는 일, 실제적 이익이 아

니고 무엇이겠는가.





반면에 진보신당은 참 어렵고 초라하게 됐다. 심상정 후보가 유시민 후보를 밀어주고 물러났지만 유시민이 패

하면서 빛이 바랬고 노회찬 대표 역시 선거를 완주하면서 '노회찬이 오세훈 승리에 일조했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진중권은 "노회찬이 한명숙의 표를 빼앗은 게 아니라 한명숙이 노회찬의 표를 빼앗은 것", "(사표

심리 때문에 노회찬의 표가 한명숙에게 많이 쏠렸는데) 그만큼 빼앗고도 졌으면 당신들은 할 말이 없다."며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진보진영 사람들의 사례를 가까이서 본 경험이 있다. 작년 지방선거, 지인 하나가 기초의원에 출마했다. 여론

조사 결과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하면 당선권에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전에도 당선

된 적이 없고 이번에도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선거마다 얻은 표도 거의 비슷했다. 즉 민주노동당

지지표는 고정적으로 정해진 지역이었다. 이쪽에서는 단일화를 제안했다. 그쪽은 거절했다. 완주하겠다는 의

사를 밝혔다. 목적은 하나다. 자신들의 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대로 당선되어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는 정치인, 정치세력에게 그런 출마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협조하고 연합해서 다른 후보의 승리를 돕고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무언가를 얻어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

각한다. 이건 뭐 고집도 아니고 그런 추상적 명분이 그토록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방송이 끝날 무렵 새삼 생각이 났다. 노회찬, 심상정은 두 달 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무산된 직후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진보신당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이날 노회찬은 진보 대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정치

그만해도 상관없다는 말까지 했다. 비록 지금 상황은 비루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정치인들이 없다는 생각을 한

다. 
앞으로의 통합 논의에서 노회찬, 심상정이 분명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