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론스타와 외환은행, 론아시아와 한영은행>에 이어 글을 풀어 본다. <마이더스>의 최완규 작가는 '정치 비자
금'이라든지 '재벌과 기업의 유착'과 같은 보편적인 소재 뿐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드라
마에 녹여 넣었다. 당연히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쉬워진다. 당시 상황,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현실을 알면
알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마이더스>다.
유인혜(김희애)에게 배신당한 김도현(장혁)은 교도소에서 구성철(김병기)을 만난다. 구성철은 과거 인진그룹 회장 유
필상(김성겸)의 수족 노릇을 했으나 정치 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버림 받은 인물이다. 같은 목적을 갖게 된 두 사람
은 출소 후 인진그룹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먼저 목표가 된 인물이 유필상의 장남이면서 인진건설의 대표이사인
유기준(최정우)이다. 유기준과 안면이 있는 구성철은 유기준을 찾아가 건설업계의 건실한 회사인 리큐엔지니어링을
거론하며 리큐와의 M&A를 제안한다. M&A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그룹 내에서 자신의 입지도 높이기 위해
유기준은 백방으로 뛴다. 하지만 아버지 유필상도 동생 유인혜도 등을 돌리면서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급기야 자
신의 인진건설 지분을 처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주식은 기다리던 김도현 팀이 그대로 쓸어 담는다. 유기준이 경영권
방어가 어렵게 된 상황, 주주총회가 소집된다. 안건은 대표이사 해임 건. 유성준, 유인혜는 우호 지분을 합하면 경영권
방어는 가능하리라 예상했지만 주총 결과 유기준 대표가 해임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신임대표에 대한 안이 발
의되는데 그 인물이 바로 구성철이다. 드라마틱한 복수 1편이 완성되는 장면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줄곧 현대건설이 겹쳐졌다.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의 싸움, 작년 현대건설 인수전은 우리 경제
전체를 달군 이슈였다.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1조원이 넘는 보유 현금 등 현대건설 자체의 가치도 가치지만
현대건설이 중요했던 진짜 이유는 현대건설이 가지고 있는 현대상선의 지분 때문이었다. 현대상선이 현대그룹의 지주
회사이기에 현대상선을 차지하면 현대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인수전이 본격화 되면서 주식시장엔 흥미로운 광경이 자주 연출됐다. 먼저 현대상선, 어느 순간 현대상선의 주가가 지
나치게 급등했다. 상승에 대한 기대감, 지분싸움에 따른 주식 확보 등등. 시총 5조원의 육박하는 회사의 주가가 상한
가를 친 날도 있다. 3만원 언저리에 있던 주가는 단숨에 5만원 후반까지 치고 올라갔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었
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더 대단했다. 작년 12월 경 6만원대에 있던 주가는 불과 한 달 사이 22만원을 넘어섰다. 단기간
에 3배가 넘는 상승이었다. 말 그대로 '작전주'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현대상선과 달
리 주식수가 불과 100만주 밖에 되지 않는다. 여러 날 상한가를 치면서 올라갔는데 거래량 없이 올라갔다. 정보와 자
금이 있는 누군가가 나오는 물량을 그대로 받으면서 올라간 차트였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급락을 했고 현대증권 역시 현대그룹의 무리한 인수로
유상증자, 매각 등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거란 전망에 급락을 피할 수 없었다. 현대증권의 경우 당시 노조가 현대그룹
의 현대건설 인수를 반대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여러 상황들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무리'임을 보
여줬고 최종 승자도 그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
김도현, 구성철의 두 번째 목표는 인진캐피탈의 유성준(윤제문)이었다. 이 작업엔 김도현과 손 잡은 최국환(천호진)이
함께 했다. 최국환이 유성준에게 김도현과 함께 할 것을 권유했고 유성준은 김도현을 끌어들여 인진건설을 되찾으려
했다. 이후의 상황은 인진건설 때와 동일하다. 인진건설에 대한 적대적 M&A를 공표한 유성준은 공개적으로 인진건
설의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김도현의 작업에 따라 인진건설은 유상증자를 발표하고 추가자금이 필요게
된 유성준은 유기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진캐피탈 지분을 처분한다. 그리고 유성준을 배신한 김도현은 곧 인진캐
피탈에 대한 적대적 M&A를 선언한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극본의 모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건설을 둘러싼 싸움이 드라마에서 많이 보인다.
작가가 놀랍게 적용하고 변형해 드라마에 만들어 넣었다. 하나 더 추가하면 한영은행 인수전에서 유성준의 IJ 인베스
트는 자금조달을 위해 인진캐피탈과 신흥은행, 그리고 몇몇 저축은행을 묶은 컨소시엄을 구성한 내용이 있었다. 현대
건설 인수전을 관심있게 본 사람들은 이 모양을 보고 떠올릴 다른 컨소시엄이 있다. 인수전 당시 현대그룹이 만들었던
자금 조달안. 독일의 M+W 그룹,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국내의 외환은행, 동양종금 등 컨소시엄에 오르내린 이름도
다양하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처럼 자금 조달 문제는 논란에 논란을 낳았고 그로 인해 결국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만 해도 인수한 것과 다름 없는 분위기였지만 자금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느긋하게 기다린 현대자동차가 현대건설을 가져간 것이다.
현대건설 인수전, 보면 볼수록 <마이더스>와 닮은 장면들이 많다. 실제 사건들을 멋지게 드라마에 녹여 넣은 작가의
역량에 감탄, 또 감탄이다. 드라마 후반부 김도현과 이정연(이민정)의 연애사를 만들어 주느라 맥이 좀 빠진 기운이
있지만 '기업의 인수, 합병을 그리는 드라마'라는 기획의도에 걸맞게 그에 어울리는 결말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
정치드라마든 의학드라마든 말만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지 늘 연애만 하고 출생의 비밀에 가족 싸움만 가득한 한국 드
라마에서 시청자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멋진 드라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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