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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허트 로커>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걸작




개봉일 : 2010년  4월 22일




1998년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를 석권했던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라는 영화로 또 한번 신화를 쓰며

2010년 아카데미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아카데미는 제임스 카메론에게 웃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변

수가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이면서 여성감독 캐서린 비글로우가 <허트 로커>라는 걸작 전쟁영화를

내놓은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볼거리도 없는 이 저예산 전쟁영화에 아카데미는 감동했고 캐서린 비글로우와

<허트 로커>는 2010년 제 82회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된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는 91년 작품 <폭풍 속으로>였다. 패트릭 스웨이지, 키아누 리

브스의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작품. 이 영화 한 편으로 캐서린 비글로우는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여성감독이 그려내는 남성의 세계가 그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남성 드라마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허트 로커>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며 전쟁이 파괴하는 개인을 그린다.     


  



영화는 이해하기 쉬운 드라마를 그리지 않는다. 감독은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그냥 사실을 그릴 뿐이다.

그저 관객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영화다. 드라마를 논하기에 앞서 영화의 화면은 관객에게 편안하지

않다. 유려한 화면, 매끄러운 편집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영화는 불친절하다. 영화에는 그 흔한 스테디캠 샷도

없고 지미집이나 크레인 따위로 매끄럽게 뽑아내는 화면도 없다. 그저 거칠게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핸드 헬드

만 있을 뿐이다. <본 아이덴티티>가 그랬다.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의 불안한 심리를 그리기 위해 시종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들이 스크린을 채웠는데 <허트 로커>도 그렇다. 이 영화 속 군인들의 심리는 늘 불안정

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의 심리를 카메라는 거친 영상으로 묘사한다.





저예산 영화이고 스타 배우들이 없지만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몰입이 쉽기도 하다. 초반부 등장하는 톰슨 하

사 역의 가이 피어스와 리드 대령 역을 맡은 데이빗 모스(사실 데이빗 모스가 낯선 관객도 많을 거다.) 정도를

빼면 모두 관객에게 낯선 배우들이다. 이런 배우들이기에 관객은 유명 배우로 인해 방해받지 않고 영화 자체

에 몰입할 수 있다. 감독은 이들 배우들을 통해 전쟁을 실감나게 또 건조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특별히 폭

발물 제거반 EOD를 그리고 있기에 영화 속에 다이나믹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은 없다. 그렇기에 지루

하기도 하지만 감독은 정적으로 사실적인 화면을 제대로 만들어낸다. 영화는 시쳇말로 '후까시' 잡는 전쟁 영

화가 아니다. 폼나게 싸우고 폼나게 죽고 폼나게 구조하고 걔중에 영웅도 나오고 그런 전형적인 패턴과는 전

혀 상관없는 작품이 <허트 로커>다. 영화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불안정하고 심리적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다. 장난하는 도중에 병장 샌본이 제임스 하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장면이 그와 같은 인물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트 로커>를 보면 전쟁을 통해 트라우마를 갖게 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디어헌터>나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항상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는 미국에게 역시 아픔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영화 소

재는 전쟁과 그 희생자들이다. <허트 로커>의 영화 속 군인들은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다. 리드 대령으로부터

"어떻게 지금껏 873개의 폭탄을 해체했냐."는 질문을 받은 제임스 하사(제레미 러너)는 "죽지 않으면 됩니다."

라고 답한다. 그들에게는 하루 하루 살아남는 게 스트레스이면서 숙제다. 늘 대화를 나누던 친구 같은 군의관

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사병 앨드리지(브라이언 개리티)는 넋이 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전쟁터에서의 상

처는 이들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짐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벌이는 전쟁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돈도 돈이지만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죽

고 또 살아남더라도 정신적으로 병들어갔다. 미국의 욕심, 국가라는 괴물이 저지르는 범죄다. 캐서린 비글로

우는 이렇게 국가의 폭력, 그로 인해 희생당하고 병들어가는 자국의 군인들을 그린다. 영화가 시작할 때 "전투

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다."는 문장이 나온다. 영화 속 제임스 하사는 전역해 그토록 그리던 집으로 돌아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가 방호복을 입는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전쟁기계는 불귀(不歸)"라

는 표현을 했다.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명장면, 영화는 이렇게 인상적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