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Review

<최종병기 활> 한국 사극 액션의 새 장을 열다.




개봉일 : 2011년  8월 11일


최근 한국 영화를 보면 낯선 이름의 감독이 종종 보인다. 먼저 2008년 <과속스캔들>이라는 데뷔작으로 평단

의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올해 <써니>로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하며 대중영화 감독으로 훌

륭하게 자리잡은 강형철 감독. 그리고 <극락도 살인사건>, <핸드폰>이라는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 온 김한민

이라는 감독이 생각난다. 올해 최대 화제작 <최종병기 활>의 감독이다. 이만한 규모의 영화, 이 정도 밀도있는

드라마를 이제 겨우 두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역량에

감탄 또 감탄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인조의 조선시대.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몰락하고 살아남은 남매 남이(박해일)와 자

인(문채원). 자인이 혼인하는 날, 남이는 그들은 떠나는데 바로 그 날 청나라 군대가 조선을 침략하고 병자호

란이 일어난다. 자인이 수많은 조선 백성과 함께 전쟁의 포로로 청나라 군에 끌려가자 남이는 홀홀단신 동생

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 나선다.



많은 영화가 실제 역사 속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 안에는 늘 개인의 희,비극과 운명의 드라마가 있다. 특히 전

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 연인, 가족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드라마틱하고 관객이 몰입하기 좋기에 그와 같은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다룬 <진주만>이 그랬고 미국 독립전쟁을 다룬 <패트리어트

>가 그랬으며 6. 25를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랬다. 하나 같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어찌보

면 전쟁은 그저 '시련'을 제공하는 배경일 뿐 결국은 가족과 연인의 드라마이기도 한 영화들이다. 
<최종병기

활>도 마찬가지다. 남이(박해일)는 청나라 군의 포로가 된 동생을 찾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다. 나라를 위한 싸

움이라든지 하는 거창한 명분은 없다.  





이 영화를 보면 크게 두 가지가 현대 대한민국과 오버랩된다. 하나는 남이 가족의 몰살, 멸문지화다. 조선시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도 수양대군의 무리는 김종서를 역적의 수괴로 몰아 그

일가와 조정 대신들을 몰살한다. 정적을 죽이기에 더없이 좋은 빌미다.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독재 권력은 눈

에 거슬리는 이들에게 '빨갱이',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여 죽음으로 몰았다.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되어 8명의 목숨을 사법부가 앗아간 인혁당 사건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

고 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좌파' 운운하며 딱지 붙이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의 '전통'은 여전

히 우리 안에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백성이다. <최종병기 활>은 활을 소재로 한 활극이기도 하면서 정치적이기

도 하다. 영화는 병자호란이 시작하던 시점을 명확히 자막으로 명시하고 마지막에도 전쟁 포로에 관한 자막을

채워넣는다. 50만이라는 숫자, 엄청난 사람들이 전리품이 되어 청나라로 끌려갔다. 하지만 조선은 국가적 차

원에서 그들에 대한 송환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백성이 핍박 받고 유린당하는데 국가는 지켜주지 않았다. 조선

의 여성이 저들의 노리개가 되는 영화 속 장면을 보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현대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일본 강제 징용자들의 유골을 송환하는데 관심이 없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에 대해 "그

들은 자진해서 돈벌러 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류'에 포진해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자위대 창군을 기념

하는 행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고 집권당 유력 인사가 그 곳에 참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영화는 동생을 찾겠다는 오빠의 집념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연기라는 게 그렇다. 배우

의 모든 움직임에는 당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기에 힘이 생긴다. 범위를 영화로 돌려 크게 봐도 다르지

않다. 남이라는 주인공의 행동에는 당위가 있다. 동력이 확실하기에 영화에는 힘이 있다. 스토리가 부실하다

는 얘기도 종종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영화는 분명히 활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고 활을 이

용한 싸움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과물은 훌륭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흔한 설정, 남이와 청

의 장수 쥬신타(류승룡)의 대결 구도 또한 짚어볼 만하다. 일찌감치 영화 초반부에 두 사람의 대결 구도가 완

성된다. 남이가 달아나고 쥬신타가 쫓는다. 남이는 쥬신타의 군사들을 하나씩 쓰러뜨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끝까지 간다. 감독은 두 무사의 대립을 멋지게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 재미있게 그려냈다. 





배우들이 활을 다루는 모습이나 말을 타는 장면들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볼거리임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가

장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촬영이었다. 특히 산 속에서 남이와 쥬신타가 쫓고 쫓기는 장면을 그려낸 화면이 압

권이었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산 속에서의 그림을 그 정도로 매끄럽게 찍어낸 영화는 본 일이 없다. 인간과

멧돼지와의 사투를 소재로 한 2009년 작품 <차우>에도 산 속에서 촬영한 장면이 많았는데 당시 관계자 인터

뷰에서 산 속에서의 촬영이 어려웠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카메라 이동이 수윌치 않은 숲 속, 비탈에서

긴박하고 역동적인 화면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신병기 활>의 스테디캠은 훌륭하다. 특히 쥬신타

일행의 그룹 샷이 멋지다. 편집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촬영이 괜찮았기에 훌륭한 영상이 나오

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한 가지 기억나는 흥미로운 소재는 호랑이다. 청의 왕자 도르곤(박기웅)은 자인(문채원)에게 자신의 삼촌 쥬

신타가 사냥한 호랑이의 가죽이라며 자신이 두르고 있는 호랑이 가죽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호랑이 가죽이

더위와 추위 뿐 아니라 불과 비도 막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쥬신타가 산 속에서 자신의 수하와 함께 호랑이를

또 한번 쓰러뜨리며 호랑이가 영화 속에서 의미있는 소재임은 확인해 주는데 정작 재미있는 장면이 그 앞에

나온다. 도르곤을 인질로 잡은 남이가 술을 뒤집어 쓴 도르곤의 몸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다. 도르곤의 몸에 붙

은 불은 도르곤의 몸을 다 태울 때까지 활활 타오른다. 문득 생각난다. 호랑이 가죽은 불도 막아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필요한 딴지 같기도 하지만 그냥 생각난다. 물과 불을 막아준다는 '무리한' 대사만 없었어도 그런

생각은 안 들었을텐데.   



현재까지 <최종병기 활>은 올해 가장 성공한 한국 영화다.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김한민 감

독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장르에서 한결 진일보한 모습으로, 매끈한 대중 영화를 들고 관객 앞에 돌아왔다.

확실히 작품이 좋으면 관객은 반응한다. 김한민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