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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alk

한국영화 대표감독 홍상수를 생각하며




홍상수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홍상수라는 감독을 아는 영화팬이 얼마나 될까. 아니 질문을 바꾸자. 홍상수 감

독의 영화를 하나라도 제대로 본 영화팬이 얼마나 될까. 예전(90년대?)엔 영화팬이라면 당연히 홍상수와 그의

영화를 알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특히 20대 영화팬들은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정

서적으로도 그를 알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는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데뷔작이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

후 지금까지 1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해 왔다. 그는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 감독이다. 다시 말해 그는 상업영

화, 대중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를 만든다. 상업영화, 대중영화를 어떻게 정의할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

서를 가진 사람들을 목표로 삼아 만든 영화'라고 하면 될까. ('보편적, 일반적인 게 도대체 뭐냐.'라고 물을 사

람이 있을까. 그렇게까지 가고 싶진 않다. 그쯤되면 궤변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

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이의를 제기할 영화팬이 있을까. 일단 그의 영화를 대부분 관람한 홍상수 감독의 팬으로 느끼기엔 그렇

다. (여기서 밝히지만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그의 팬이다.)




                                                                                                         2000년 <오! 수정>
   


                                                                                                     2002년 <생활의 발견>    

  
그의 세 번째 영화 <오! 수정>과 네 번째 <생활의 발견>, 처음 두 편의 영화와 달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배

우들이 등장한다. 이은주, 문성근, 정보석, 김상경, 추상미까지. 이 정도 캐스팅이면 배우만 놓고 봤을 때는 상

업영화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는 지루하다. 객관적으로 지루하다. 물론 이 영화들을 즐길

수 있는 관객도 있다. 하지만 다수 관객에게 분명 이 영화들은 납득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지루한 영화다.

고현정이 등장한다고 그런 흐름이 달라지진 않는다. <해변의 여인>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두 편의 영

화에 고현정이 출연했지만 영화가 매끈한 드라마로 바뀌지는 않았다.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우중충한 분위기

는 벗어버리고 다소 유쾌하고 밝은 곳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드라마는 관객에게 불친절하다. 사실

드라마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드라마 아닌 드라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 그의 영화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보는 관객은 한편 우쭐하기도 하고 한편 어

깨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다. 소위 예술영화를 본다는 자부심에 그렇다.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고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감정에 울고 웃는 대중영화에 익숙해 홍상수의 영화를 견뎌내지 못하는 관객을 향해 '너희는 그냥

그런 영화나 봐라.'하며 한 마디 던지는 그런 자부심? 그런 게 있을 거다. 그런데 '빛 좋은 개살구'랄까. 이런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만드려면 돈이 들어간다. 영화사는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와야 하고 감독을 비롯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

들에게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만들어 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힘들

어진다. 홍상수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은 감독이니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무리 홍상수의 이름을 걸어도 자금

을 끌어오기는 쉽지 않다. 투자해서 이익을 내지 못할 곳에 돈을 넣고 싶은 투자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경우 방법은 하나다. 속된 말로 자기 돈 '꼬라박으며' 찍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투자자만 돈을 날린

다. 좋은 작품이라 호평받고 외국 다니며 이런저런 상 받으면 감독이야 영광이고 좋겠지만 투자자에겐 남는

게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실 국내 영화시장도 짚어봐야 한다. 우리 영화시장에서 홍상수 부류의 영화가 설 자리

는 없다. 대중의 구미에 맞춘 영화가 아니면 제작은 물론 상영도 쉽지 않다. 영화시장이 크고 수요도 다양한

외국의 경우라면 이런 영화도 시장에 그들의 몫이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기껏해야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그 비슷한 극장에 잠깐 걸었다 내릴 뿐이다. 어쩌겠는가. 관객이 보지 않겠다는데. 문화 예술을 관

장하는 정부 기관에서 정책적으로 지키고 키워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으리라.

홍상수의 새로운 장편 <북촌방향>이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도 전과 다르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그

의 팬들은 환호하고 박수치겠지만 절대 다수의 영화팬은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조용히

짧은 상영 (79분이다. 영화 자체도 짧고 상영할 수 있는 기간도 짧다.) 이 마무리 될 것이 분명하다.




                                                                                           2008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북촌방향>이 개봉하면 나 역시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을 거다. 영화를 보며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지만 '이

게 홍상수지.'라고 읊조리며 관람을 마칠 거다. 그의 영화엔 왠지 '꼭 봐야 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영화

를 보며 졸고 딴 생각이 들지언정 끝까지 본다. 다 보고 영 찜찜하고 내키지 않아도 그냥 그래야 한다는 느낌

이다. 한국영화에 이런 감독 하나 정도 있는 것, 나쁘지 않다. 아니 자랑이라고 할까. 그게 맞지 싶다. 예술영

화라는 한쪽 모퉁이에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대표감독 홍상수의 영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홍

상수의 영화세계다.     




                                                     <북촌방향>을 들고 지난 5월 칸을 찾은 홍상수, 유준상, 송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