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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계급사회, 무상급식과 대학등록금




며칠 전 길을 지나다 무상급식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파란색 현수막을 걸고 테이블도 파란색

천으로 덮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하고 있었다. "가진 사람들에게는 돈을 걷고 없는 사람들에게만

무상으로 밥을 줍시다." 대략 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간혹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요사이 등록금 문제로 학생들과 이 문제에 관심있는 어른들이 힘을 합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체포됐다가 훈

방된 김여진 씨가 화제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그런 이슈메이커가 있기에 뉴스가 계속 만들어지고 대중에 이

문제가 끊임없이 노출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기에 부담도 될텐데 그에 개의치 않고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한다. 





급식을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이유는 수차례 방송과 언론에서 다룬 바 있다.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들

을 수 있었던 내용이 '낙인'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누구는 돈을 내고 먹고 누구는 안 내고 먹는다면 아이

들이 그것을 모를 수가 없다. 차라리 굶고 말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며 밥을 먹고 싶은 아이들이 얼마나 될

까. 아이들은 밥을 먹기 위해 부모의 실업과 집안의 형편을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 학교는 말한다. "공짜밥을

먹으려면 너의 가난을 증명해!"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자연히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작게는 자신이

쓰는 학용품, 가방, 입는 옷, 신발로 시작해서 부모가 태워주는 차, 그리고 집, 사는 동네까지 아이들은 모든

것을 의식한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부모의 재산이 곧 자신의 재산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힘이

됨을 알고 있다. 아파트 평수가 초등학교 아이들의 대화 소재임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한참 예민할 시

기에 아이들이 적어도 밥 먹는 문제로는 상처받지 않도록 '낙인'을 찍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무상

급식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계급의식은 대학생도 짓누른다. 예전에는 부모가 사주는 차, 명품 가방과 옷으로 그것이 드러났다면 지금은

그런 건 볼 필요도 없다. 등록금이라는 괴물이 학생들의 삶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1년 등록금이 천만원에

육박하는 시대. 집에서 온전히 지원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위해 곧 학교를 나와

야 한다. 교정에 앉아 낭만을 누리고 친구들과 교제할 여유 따위는 없다. 반면 학비 걱정이 없는 학생들은 학

교에서 밥 먹고 공부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학생들의 계급은 그들이 외적으로 하고 다니는 모습

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의 계급이 그대로 자녀의 계급이 되는 세상이다. 그냥 삶의 패턴에서 알 수 있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사립대학 총장들의 모임에서 10% 인하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하

고 있다. 결국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국가에서 대학의 배를 채워달라는 얘기다. 수백억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등록금을 내릴 의사는 없음을 확인해 준 셈이다. 학생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촛불집회는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작은 힘이 거대 사학을, 한국 기득권의 핵심인 대학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한 걸음이라도 나아간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