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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alk

<테이큰>과 <호스텔> 영화가 만드는 국가의 이미지



영화 <테이큰>이 흥행할 당시 "배낭여행의 위험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녀가 섞여 있어도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특히 여성들만 함께 할 경우의 위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영화 속에서 여성 인물이 낯선 남자에게 "친구 집이 비어 우리 둘이 있을거다."라는 넋 나간 소리를 하는 부분 등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사실 영화의 교훈은 이런 대사에서 주는 건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영화를 보면 인상에 뚜렷이 남는 나라가 있다. 바로 알바니아다. 딸을 납치당한 브라이언(리암 니슨)이 인신매매범이 손에 하고 있었다는 달과 별 문신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자 전직 CIA 요원인 그의 친구가 알바니아 인신매매 조직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를 보면서 줄곧 알바니아를 의식하긴 했다. 영화를 본 후엔 알바니아라는 국가의 이미지는 더러운 '인신매매국'이 된다. 






그런데 2편으로 가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알바니아가 드러난다. 영화의 시작 자체를 알바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브라이언, 노쇠한 전직 요원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악당들이 측은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 작은 나라가 안쓰럽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힘없는 작은 나라다.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존재함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파급력 큰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나라를 이렇게 묘사하면 이 영화를 본 외국 관객이 알바니아에 대해 어떤 이미지, 편견을 갖게 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7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호스텔>이라는 영화가 있다. 당시에 세계적으로 꽤 바람을 일으킨 영화인데 얼마 전 보게 되었다. 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미국 '남성' 청년 3인이 겪게 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일라이 로스라는 감독의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쿠엔틴 타란티노가 제작에 나섰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작품이다. 500만불이라는 저예산 영화로 크게 흥행한 것도 꽤 유명한 사실이다. 영화는 B급 정서를 지향한다. 선혈이 낭자한 슬래셔 무비지만 <스크림> 부류의 매끈한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촬영도 편집도 투박하고 거칠다. 특히 특수효과 쪽에서 세련미가 없다. 물론 이 모두가 의도된 작품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슬로바키아로 향한다. 영화를 본 관객 가운데 "슬로바키아 무섭다."라는 반응을 보인 관객이 상당수다. 영화를 보면 일단 동유럽에 대한 공포가 생기고 다음은 당연히 슬로바키아라는 나라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영화가 상영된 슬로바키아에서 당시 영화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슬로바키아 문화위원회 소속 의원의 "모든 슬로바키아인이 불쾌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인터뷰도 볼 수 있었다. 여론을 접한 일라이 로스 감독은 "미국인들은 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 작품은 미국인이 전 세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변명이라 하기엔 너무나 옹색하다. 미국인이 모르는 세계의 어떤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 그 나라를 그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이유는 당연히 없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종종 느끼지만 작은 나라에 대한 '배려'가 참으로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중동의 나라들은 일상적으로 당하는 대접이기도 하다. 미국 영화에서 '중동 국가들은 테러국, 중동 사람은 테러리스트'는 일반화된 명제 아니던가. 알바니아라든지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이 영화들을 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테러'라는 단어와 '인신매매', '도륙', '살육'이라는 단어는 보는 이에게 분명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관객이 이란, 이라크를 생각하며 공포를 느끼지는 않으니 그렇다. 타국을 향한 미국의 시선, 인식이라는 게 참으로 찜찜하다. <테이큰>도 그렇지만 특별히 <호스텔>을 보고 여러모로 찜찜한 영화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