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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듣보잡', 진중권이 즐겨 쓰는 폭력의 언어



예전에 진중권이 변희재를 칭하며 쓴 표현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란 의미의 '듣보잡'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희재라는 인물이 온라인에서 꽤나 혐오스러운 인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통쾌하게 생각했던 표현이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진중권의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변희재에게 씌운다.


변희재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중이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 '듣보잡'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불편하다. 그 표현이 진중권이라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변희재라는 인물에게 쓴 표현이기에 그렇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표현이다. 진중권의 인간 됨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인이건 학자건 우리 사회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그 어떤 이가 지금까지 그와 유사한 표현을 한 사례가 있을까. 잘 알려진 사람이 그와 유사한 인지도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그 약점을 이용해 공격한다면 이보다 야비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진중권 역시 처음에는 이름 없는 문화평론가였다. 이후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대학의 교수라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 또한 예전에는 그가 공격했던 이문열이나 이인화, 조갑제와 같은 인물과 비교하면 완벽한 '듣보잡'이었다. 이문열과 같은 대작가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잡놈' 진중권이었다. 그럼에도 '어른' 이문열은 그에게 "검도 1단의 실력으로 검도 9단에게 덤빈다."는 아주 점잖은 대응 정도만 했다. 진중권과 같이 예의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종자'와는 차원이 다른 어른의 모습이었다.




진중권의 무례하고 모욕적인 '듣보잡'이라는 표현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이 표현에 진중권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변희재의 공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부분에 대해 이성적, 합리적으로 반론을 펴면 된다. 그런데 진중권은 '듣보잡'이라는 감정적인 공격으로 방향을 돌린다. 따지고 보면 진중권은 늘 그렇다. 결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늘 상대를 조롱하고 약 올린다. 그게 진중권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동력(소위 말하는 진중권 스타일)이자 진중권의 힘이다. 변희재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진중권이다. 넌 누구냐." 한 마디로 그 얘기다. "이름도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잡놈이 감히 나에게 대드는거냐." 이게 진중권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 지식인 등의 유명인과는 어떤 논쟁도 벌이기 어렵다. "나는 모두가 아는 아무개인데 너는 뭐냐."라는 대응 앞에서 이 땅의 대다수 '듣보잡'은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런 언어 자체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언어가 쉽게 전파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터넷 뉴스의 댓글이나 트위터 타임라인만 봐도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그 표현을 쓴다. 그 표현을 쓰는 자신들 모두가 '듣보잡'이라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나마 뉴스 속에서 그들이 칭하는 '듣보잡'들은 뉴스에 악성 댓글 따위나 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다수 네티즌 '듣보잡'들이 '듣보잡' 운운할 위치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대중은 아무 생각 없이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즐긴다. 이게 진중권의 저급한 언어 사용이 낳은 부작용이다.




이전에 나는 경희대 이택광 교수를 비판하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이택광은 진중권에 비하면 훨씬 덜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물론 그에게 '듣보잡과 같은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서 누군가 이택광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택광 씨의 꽤나 신사적인 반문.. 듣보잡의 개드립이 아니라.." 이택광을 옹호하면서 쓴다는 표현이 고작 '듣보잡'이었다. 댓글을 단 사람도 '듣보잡'이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거다. 우스운 모습이다. 내 글을 비판하면서 비판하는 사람 스스로는 이택광에게 더욱 폭력적인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없이 쓴다.

진중권의 자신의 언어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최근에도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쓰며 이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듣보잡'의 진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뜨고잡(뜨고 싶은 잡놈)이 되어 고소 고발 크리로 소란을 피워 기어이 어들잡(어디서 들어보긴 한 잡놈)이 됩니다." 진중권은 나름대로 위트있다고 생각하고 쓴 문장이지만 '듣보잡'이라는 표현의 폭력성을 생각하고 보면 어이가 없는 문장이다. 그렇지만 색다를 건 없다. 기본적으로 진중권의 문장이라는 것이 무례하고 폭력적인 것이기에 그렇다. 어찌보면 '닭 대가리', '새 대가리'와 같은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듣보잡'이라는 표현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언어를 일상화하고 있는 사람의 정신, 마인드라는 것이 그리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궤변가 진중권의 오묘한 언어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