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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마이 웨이> 강제규의 헐리우드 컴플렉스




개봉일 : 2011년 12월 21일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강제규 감독이 신작 <마이 웨이>를 
들고 돌아왔

다. 먼저 영화 제목을 처음 접하고 작명 솜씨에 어이가 없었고 둘째로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라는

사실에 쓴 웃음을 지었다. <쉬리>에서 남북의 대립을 배경으로 했고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6.25를 그려낸 강

제규 감독은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갔다. 낡아도 너무 낡았다.



영화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젊은이들 준식(장동건), 타츠오(오다기리 조), 쉬라이(판빙

빙)의 비극적 삶을 그려낸다. 그런데 보여줄 것들에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는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영화는

그저 전쟁 장면만 부각할 뿐 인물과 캐릭터에 주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 준식의 캐릭터가 그렇다. 이

영화에서 준식은 줄곧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로 묘사된다. 타츠오에게는 준식의 가족을 증오할만한 이유가 있

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준식을 만난 타츠오는 준식을 구타하고 감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준식은 그런 타츠

오를 인간적으로 대한다. 그런 감정을 가질만한 묘사가 전혀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대한다. 러시아 벌목장에

선 서로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싸움에서 타츠오를 살려준다. 자신의 가족을 망가뜨린 집안의 아들인데

자신의 목숨도 내줄수 있는 마음으로 아주 인간적으로 대한다. 도무지 납득이 안될 정도로 '천성이 선한' 준식

이다. 이상한 상황은 노르망디에서 결정판을 보여준다. 노르망디 해변에서 조우한 두 사람은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두 사람은 갑자기 서로를 연인처럼 바라보며 대화한다. 도무

지 몰입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준식과 쉬라이의 관계도 억지스럽다. 스나이퍼 쉬라이가 고초를 겪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준식은 쉬라이의 가

족사진을 돌려주고 상대는 못 알아듣는 한국어로 할 말을 한다. 쉬라이가 준식이 하고자 했던 말, 준식의 마음

을 모두 이해했을까. 소련군의 기습에서 비행기에 홀로 맞선 준식을 돕기 위해 쉬라이가 뛰어온다. 이 상황도

억지스럽고 우습지만 쓰러져 죽음을 맞는 쉬라이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준식의 모습, 준식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쉬라이의 모습은 어이없고 당황스럽다. 도대체 그들이 연애를 했나 사랑을 했나. 아님 그 어떤 감정을

느낄만한 사건이라도 있었나. 쉬라이 역시 만난지 하루 된 남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대단한

'희생정신'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가 김인권이 연기한 종대다. 일본 군대에서 온갖 고난을 겪고 러시

아로 넘어가 '출세'해 완장을 차는 인물이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때로 광기로 가득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장동건)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99년 <송어>

에서 김인권을 인상적으로 봤는데 <마이 웨이>는 배우 김인권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를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다. 하지만 장동건이 연기한 준식이라는 인물은 역사

의 흐름 속에 그저 힘없이 따라가는 무기력한 캐릭터다. 반면에 타츠오는 한결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다. 분노할 때 분노하고 전쟁터에서는 광기도 드러낸다. 준식에 비해 훨씬 사람같다. 색깔이 뚜렷하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노르망디에서도 주인공은 타츠오다. 탈출 계획도 타츠오가 세우고 준식을 빼내려 동분서주

하는 인물도 타츠오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장동건이 아니라 오다기리 조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를 보며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핸드 헬드다. 영화 속 첫 전쟁터인 만주, 일본군과 소련군의 전투

에서 처음 핸드 헬드가 보여지는데 흔들림이 너무 심해 피사체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전투의 긴박함을 실

감나게 찍기 위해 그랬겠지만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과거 <쉬리> 때도 그랬다. 강제규 감독은 인물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카메라를 흔든다. 긴박하고 박진감 넘친다기보다는 영상에 자신이 없기에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마이 웨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전투 장면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

린다.


다른 하나는 음악이다. 영화 속에는 현악기가 빚어내는 슬픈 선율이 여러 차례 흘러나온다. 화면과 딱히 매치

된다는 느낌도 없을 뿐더러 관객에게 억지 슬픔을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부한 화면도 그렇다. 러시아

군복을 입고 독일군과 싸우던 타츠오는 병사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러시아 장교에게서 얼마 전 자신의 모습

을 본다. 타츠오에게도 승산없는 전투에 자신의 병사들을 몰아넣었던 기억이 있다. 후퇴하는 병사에게 총을

쏘는 러시아 장교의 모습과 부하들에게 총을 쏘는 타츠오의 모습이 겹쳐진다. 관객 입장에서 쉬운 설명이긴

한데 식상하고 진부한 묘사이기도 하다.





<마이 웨이>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강제규의 헐리우드 컴플렉스다. 강제규는 아직도 "한국영화도 이

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작이 <쉬리>였다. 헐리우드에서 가

져온 총으로 만든 영화,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영감을 얻어 촬영한 도심 총격전. 헐리우드의 테크닉과 하드

웨어, 스케일은 강제규의 꿈이었다. <쉬리>에서 한 걸음 나간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였고 그 방점을 찍은 작

품이 <마이 웨이>다. 여기선 그간 그가 체득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봐라! 내가 강제규다."라고 말

하고 있는 듯하다. 총과 칼, 탱크가 빚어내는 전쟁의 향연,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헐리우드가 보여주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과시한다. 어떤 관객은 말한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장면들을 볼 수 있다니" 정확하게

강제규가 듣고 싶은 말이다. 우리 영화도 더 이상 헐리우드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싶은거다. 시대착오

적인 생각이다. 저들이 수 백억, 수 천억을 써서 만드는 그림을 280억으로 만들어냈으니 비용 대비해서 큰 성

공이라 하겠으나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들과의 물량 대결은 결코 승산이 없거니와 총과 탱크가 만

들어내는 사실적인 전투 장면 따위가 결코 영화의 본질이 아니기에 그렇다. 영화의 묘미는 당연히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에 있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의 머리 속엔 오로지 스케일과 하드웨어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심형래 감독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감독의 역량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교하고자 하는 건 그

들이 두는 가치다. 심형래 감독은 오로지 컴퓨터그래픽 밖에 모른다. 캐릭터와 드라마는 안중에 없다. 그래서

<디워> 같은 영화를 만드는거다. 진중권은 <디워>를 포르노에 비유했다. 포르노에서는 섹스만이 중요하다.

섹스 이전에 묘사되는 모든 상황은 섹스까지 가기 위한 데코레이션에 불과하다. <디워>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

터는 사람이 아니라 이무기다. 사람들이 등장해 대화하는 장면들은 이무기가 도시를 부수고 인간들과 싸우는

장면 앞에 나오는 데코레이션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이 웨이>도 다르지 않다. 영화에는 몇 차례 큰 전투 씬이

있다. 만주에서 일본군과 소련군의 전투, 독일에서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투, 노르망디에서 독일군과 연합군의

전투. 모두가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고 어떤 이의 말을 빌리면 "당시 전투의 고증에 충실한 장면"이라고

도 한다. 하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부분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장면들은 심형래의 <디워>에 나오는 이무기의

전쟁과 다르지 않다. 강제규의 <마이 웨이>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이 전투 씬들이다. 전쟁하는 시간 이외의

장면에 등장하는 준식도 타츠오도 쉬라이도 모두 이 전쟁을 위한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280억의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한다.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어간다는 계

산이다. 그런데 작품 자체도 함량 미달이지만 마침 <미션 임파서블4>라는 강적을 만나 1천만에는 한참 미치

지 못할거라 예상해본다. 또한 그게 한국영화를 위해서도 좋다. 하나의 영화가 롱런하면서 스크린 독점하고

큰 수익을 올려봐야 그 돈은 감독과 스타 배우, 제작사가 다 먹고 영화 시장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은 영화

들은 극장 잡기도 어렵다. 웃기는 생각이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션 임파서블4>가 더 크게 흥행하고 롱런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미 본 <미션 임파서블4>를 다시 볼까 고민하다가 <마이 웨이>를 선택했

다. <마이 웨이> 스코어에 포함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분명 흠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제대로 비판하고

자 하는 마음으로 관람했다. 역시 강제규의 영화, 총체적 난국이다. 여러 가지로 찜찜한 <마이 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