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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eview

<패트리어트> 멜 깁슨과 히스 레저의 만남



개봉일 : 2000년  7월 15일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사우스캐롤라이나 의회에서도 다른 주와 함께 전쟁에 참여할지에

대한 회의가 진행된다. 한때의 전쟁영웅 벤자민 마틴(멜 깁슨)은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고 참

가하지도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아들이 영국군 장교 테빙턴 대령(제이슨 아이삭스)의 총

에 맞아 죽고 이에 분노한 벤자민 마틴은 전쟁에 뛰어든다.



영화의 큰 메시지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전쟁 참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무조건 참전해 독립을 쟁취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폭압에 분노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사람들은 쉽게 찬성

하지 못한다. 벤자민 마틴(멜 깁슨)은 말한다. "나에겐 아이가 7명 있는데 아내는 죽었소. 내가 전쟁에 나가면

아이들은 누가 돌봅니까.. 이번 전쟁의 싸움터는 국경도 저 먼 곳도 아닌 우리의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들은 전

쟁을 목전에서 보게 되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게 됩니다. 난 싸우지 않겠소." 그럼 (국가를 향한) 신념은 어떻

게 하느냐는 질문에도 "난 아비로서 그런 신념은 버릴 수 있소."라고 답한다.





역사의 페이지마다 자신을 던지고 희생하며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게 한 이들이 있다. 영화 속

에서는 미국의 독립전쟁이 그렇고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하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이라는 점령국, 군사정권 아래에서 독립과 자유를 향한 운동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힘든 길이었다. 부

모가 있고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있는 이들에게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뒤로 하고 그

길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물론 당시를 살아간 대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그들로 인해 좋은 세

상을 만날 수 있었지만 희생한 이들의 가족에게 그들은 어떤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였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일제 치하, 또는 군사정부 아래에서 살고 있을테니 다수의 사람들은

무임승차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가족을 돌봐야 하기에 어떤 싸움도 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을 위해서

라면 어떤 신념도 버릴 수 있다는 한 남자의 고백은 국가와 가정 사이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한다.   



영화는 시대극으로 대단히 매력적이다. 레드 코트로 불리는 영국군, 그리고 그들과 싸우는 민병대에 대한 묘

사도 볼 만하다. 특히 병사들의 복식과 마차, 총기 같은 소품이 시선을 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인디펜

던스 데이>, <투모로우>, <고질라>와 같은 영화들로 많이 알려졌지만 <패트리어트>를 통해 시대극 연출에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패트리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벤자민 마틴이 아들 가브리엘(히스 레저)을 구하는 과정에서 영국군

32명을 몰살하는 장면이다. 숲 속에서 벌어지는 이 작은 전투에서 벤자민 마틴은 총과 칼, 도끼로 영국 병사들

과 싸운다. 세련미는 없는 아주 고전적인 싸움의 방식이다. 하지만 <매드맥스>와 <리쎌웨폰> 등의 영화를 통

해 액션이 몸에 익은 멜 깁슨은 꽤 세련된 몸짓으로 이 장면을 소화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분노로 가득한

얼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넋이 나가 영국군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은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영화에는 당시 영국군의 악행이 수차례 묘사되는데 가장 잔인한 부분은 마을 사람들을 교회당 안에 몰아넣고

교회를 불태워 사람들을 전부 죽이는 장면이다. 벤자민 마틴(멜 깁슨) 때문에 독이 오른 테빙턴 대령(제이슨

아이삭스)의 지휘 하에 벌어지는 일로 그는 '민간인은 해하지 않는다.'는 전쟁규정(제네바 협정 정도?) 따위는

안중에 없는 군인이다. 실제 당시 영국군이라면 충분히 저지를 만한 일이었을텐데 흥미로웠던건 현재 영국과

미국의 뒤바뀐 처지였다. 지금 영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 아닌가. 미국이 벌이는 모든 전쟁에 앞잡이

가 되어야 하는 나라이고 토니 블레어라는 총리는 조지 부시의 푸들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가며

세상도 권력도 역사도 재미있게 바뀐다.





영화에서 벤자민 마틴의 상대 악역으로 등장하는 테빙턴 대령 역의 제이슨 아이삭스는 악역이 어떻게 영화를

훌륭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시종 멜 깁슨과 대립하는 구도에서 뛰어난 연기로 긴장감을 연출하며 영화가 끝

날 때까지 관객의 뇌리에 남는 인물이 테빙턴 대령이다. 또한 영국군 레드 코트를 이끄는 콘 월리스 장군 역할

의 톰 윌킨슨도 명배우다운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이 특히 적역이었던 건 두 사람 모두 세련된 영국식 영

어를 멋들어지게 구사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악역을 소화할 수 있는 얼굴을 가진 배우이기 때문이기

도 하다. 이들 훌륭한 악역의 힘으로 영화는 또 다른 동력을 얻는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히스 레저도 빼놓을 수 없다. <다크 나이트>라는 명작의 조커라는 최고의 악역을 마지

막으로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 이 영화가 나올 무렵 20살이 갓 넘었을 때지만 히스 레저는 캐스팅에 멜 깁슨

다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연 그럴만한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저음의

두툼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지금도 이런 목소리를 가진 배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배우가 조커를 연

기할 때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낸다.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다. 문득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배우, 리버

피닉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는 멜 깁슨에서 시작해 멜 깁슨으로 끝나는 멜 깁슨의 드라마다. 멜 깁슨이 연출을 맡았던 95년 작품 <브

레이브 하트>를 두고 어떤 평론가는 "배우가 자아도취에 빠지면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평을 했다. 당시엔 크

게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보면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 평이다. <패트리어트>를 보고도 비슷한 느낌이 든

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멜 깁슨을 위한 드라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아도취에 빠져 만든 영화면 어떤

가."라는 생각이 든다. 멜 깁슨 정도의 멋지고 재능있는 배우라면 그 사람 하나만이 도드라지는 영화라 해도

충분히 만들만 하다는 생각이다.  



<매드맥스>와 <리쎌웨폰>으로 기억되는 왕년의 액션스타 멜 깁슨, 최고의 배트맨 시리즈라는 평을 듣는 <다

크 나이트>에서 최고의 조커를 창조해내며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히스 레저가 만나 그려낸 미국 독립전

쟁 시대극 <패트리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