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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ociety

검색어로 추측해 보는 한국인의 심리, 생각, 관심사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는 누리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의 블로그에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들어왔을 경우 어떤 검색어를 입력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찾아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함으로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떤 글이 누리꾼의 관심을 받고 자주 노출되는지 알게 된다. 블로거에게는 종종 이를 확인해 보는 일이 꽤 재미난 일이다.   


예전에 '40대 여성의 성'을 다룬 영화에 관해 쓴 글이 있다. 性에 관해 언급하긴 했지만 주로 배우와 이야기, 즉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여배우의 노출이 화제가 되면서 'OOO 노출수위'라는 검색어로 많은 유입이 있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영화 제목이 포털 검색어 상위에 오를 때마다 'OOO 노출수위'라는 검색어로 유입자가 있었다. 그 외에도 비슷한 검색어 '40대의 섹스', '여성의 성욕'과 같은 단어로도 동일한 글이 노출되었다. 경로를 따라가 보면 내 글만 영화글이고 나머지는 관련 카페에서의 성 상담이라든지 커뮤니티에 게시한 진지한 고민글이었다. 심지어 "성인인증 절차를 겨쳐야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며 내가 쓴 글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 내 글을 열어본 (원하던 바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곤 했다. 하긴 찾고자 하는 내용과 거리가 먼 글이니 대부분 열어보고 이내 창을 닫았을 것이다. 





예전에 팟 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포털의 여론조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때 김어준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포털, 정확히 말하면 네이버는 정말 유의미한 통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용인 즉, 사람들은 정말 알고 싶은 것, 타인에게 말하기 곤란한 은밀한 것들을 검색창에 쳐 넣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40대의 섹스', '여성의 성욕'과 같은 다소 '점잖은' 단어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해 보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검색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한 '오랄 섹스', '항문 섹스' 등 (특별히 여성의 경우) 보통 입에 올리기 민망한 단어들을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검색창에는 얼마든지 당당하게 올려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이 있거나 궁금증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은밀하고 사적인 글들을 읽어볼 수 있다. 물론 성적인 내용들 외에도 다른 분야에 수많은 검색어들이 존재할 것이고 이를 분석하면 김어준의 말대로 한국인의 심리와 생각, 관심사에 대해 꽤나 유의미한 통계들을 추출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블로그로 연결하는 '여성의 성'이라든지 '섹스'라는 검색어 때문에 가끔 웃던 나는 며칠 전 검색어가 아닌 문장을 보고 또 한번 묘한 생각을 하게 됐다. "북한이 핵실험하면 어떤 주식이 좋은가."라는 문장이다. 앞서 검색어를 통해 사람의 생각, 관심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는데 '욕망'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외모에 관한 것이든 돈에 관한 것이든) 또한 검색창에 투사한다. 누구에게 드러내기 부끄럽거나 민망한 내용을 검색창에는 얼마든지 입력할 수 있다. 

전쟁, 무기와 관련한 주식 종목을 방위산업주, 방산주라고 한다. 방산주에 관한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재미있는 글이 많다. 이 사람들은 북한에서 도발할 움직임이 보이거나 남북 간에 긴장감이 흐르면 즐거워한다. 그 분위기가 곧 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각종 군사훈련, 무기 실험을 기대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아주 전쟁하라고 고사를 지내라."며 오직 주가에 매몰된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람의 욕망이란 그런 거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사람이 다치고 죽지만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목의 주가가 올라 내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이다. 사람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다. 





앞의 "북한이 핵실험하면 어떤 주식이 좋은가."라는 문장으로 검색한 사람은 정말 진지하게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어떤 종목이 좋은지 궁금해서 검색을 했을 거다. 내 글은 북한 핵실험과 한국의 주가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었고 개별적인 종목은 전혀 다루지 않았으니 애석하지만 내 글에서 원하는 바를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도 북한의 핵실험과 한국의 주식시장, 그리고 위에 언급한 영화의 '노출 수위'를 궁금해하며 검색하는 누리꾼들이 꾸준히 내 블로그를 찾고 있다. 이 작은 블로그로 연결하는 검색어만 가지고도 이렇게 '의미'있는 해석이 나오는데 거대 포털이 자신들이 수집한 검색어를 바탕으로 자료를 만들면 꽤나 대단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블로그에 들어온 사람들이 포털 검색창에 입력했던 검색어를 훑어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