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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alk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돌아보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올해도 다양한 영화들이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영화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작품도 있고 곧 개봉할 작품도 있다. 주요 부문 수상 결과를 보며 몇 자 끄적여본다.

 

 

 

 

작품상.. 9개의 작품이 경쟁을 벌여 벤 에플렉의 <아르고>가 수상했다. <아르고>는 골든글로브에서 먼저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의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지루하게 봐서 이러한 수상이 납득이 어려운 작품인데 <아르고>는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을 가져갔다. 어떤 평론가는 <아르고>를 두고 "미국인이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고도 했는데 내 경우 거의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저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건조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란 언론이 <아르고>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비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란에서는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을 대단한 영웅으로 만들지만 않을 뿐 사실상 CIA 요원인 주인공이 혼자 활약하며 인질들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미국의 '자기 반성', '자아 비판'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일 자리는 없어 보인다.     

 

 

 

 

남우주연상.. 일찌감치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수상을 확정지은 부문이다. <레미제라블>의 휴 잭맨 정도가 경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의 왼발>, 그리고 이번에 <더 마스터>를 내놓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연출한 걸작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이미 두 번의 아카데미를 손에 넣은 대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변없이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여우주연상.. <아무르>의 엠마누엘 리바가 경쟁자였다고는 하지만 여우주연상 또한 남우주연상과 마찬가지로 제니퍼 로렌스의 수상이 유력했다. 골든글로브가 인정한 이 20대 초반의 여배우는 이른 나이에 아카데미까지 손에 넣으며 배우인생의 탄탄대로를 예고했다. 수상을 막을만한 이렇다할 경쟁자가 없었던 것도 제니퍼 로렌스에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남우조연상.. 여느 부문보다 쟁쟁한 후보들이 노미니를 채웠다. <링컨>의 토미 리 존스, <더 마스터>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로버트 드 니로까지.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젊은 거장의 <더 마스터>가 의외로 혹은 완벽하게 홀대받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남우조연상 정도 가져갔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남우조연상은 <장고>의 크리스토프 왈츠에게 돌아갔다. <바스터즈>에 이어 <장고>까지 크리스토프 왈츠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에서 또 한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여우조연상.. <레미제라블>의 앤 해서웨이가 일찌감치 예약한 부문이다. 샐리 필드나 헬렌 헌트 같은 베테랑 배우들을 따돌리고 여우조연상 역시 여우주연상과 마찬가지로 젊은 배우가 차지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출연자들이 연기 관련 4개 부문에 걸쳐 모두 노미니되었다는 사실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며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아카데미에서는 이 영화 속 배우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과 더불어 가장 관심이 가는 부문이다. 무엇보다 <더 마스터>의 폴 토마스 앤더슨과 <레미제라블>의 톰 후퍼가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후보에 오른 감독들을 보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두 감독의 명성을 볼 때 당사자들은 물론 영화팬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링컨>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수상할거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의외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 감독이 수상했다. <파이터>로 83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데이빗 O. 러셀은 이번에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라는 좋은 작품으로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각본상.. 마크 보얼이 각본을 맡은 <제로 다크 서티>도 좋은 작품이고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수상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각본상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에 돌아갔다. <장고>는 감독상, 작품상 등의 후보에는 오르지 못하며 이번 아카데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남우조연상에 이어 각본상까지 2개 부문의 트로피를 가져가며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독식 없이 좋은 영화 여러 편이 고루 트로피를 나눠가졌다. 예상했던 수상 못지 않게 의외의 수상도 있었던 아카데미였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앞서도 언급했듯 <더 마스터>가 전혀 주목받지 못한 부분이다. 지난 69회 칸 영화제에서 김기덕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나와 이 작품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또 남우주연상은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공동 수상했다. 적어도 영화 자체가 함량미달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마스터>는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어디에도 노미니되지 못했다. 

 

 

 

 

<제로 다크 서티>가 주목받지 못한 것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캐서린 비글로우를 좋아해서 안타깝고 궁금하다. 이 작품 역시 <허트 로커>에 버금가는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에만 노미니되었고 수상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83회 아카데미를 <킹스 스피치>로 휩쓸었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수상) 톰 후퍼 역시 이번에 <레미제라블>을 내놓았지만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앤 해서웨이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뿐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는 못했다. 

캐서린 비글로우도 그렇다. <허트 로커>는 82회 아카데미에서 주요 부문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 때는 특별히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상대로 거둔 결과여서 유난히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불과 3년이 지난 85회 아카데미에서 캐서린 비글로우에게 또 한번 아카데미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카데미는 끝났고 <링컨>, <제로 다크 서티>, <장고>와 같이 아직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수상작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영화팬들은 즐겁다.